"일본 우경화에 신뢰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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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2012.12.12 기사 ]
"日, 왜 이러나" 발끈한 일본인
"일본 우경화에 신뢰 추락"
고노 前장관, 정치권 국수주의 독려 발언 비난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연합뉴스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 정치권의 지나친 우경화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비판적 진보세력이 사라지고 일본의 신뢰가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노 전 장관은 12일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에서 "냉전이 끝나자 공산당과 사민당 등 좌파의 입지가 약해지고 보수의 발언이 강해졌다"며 "민주당 정권조차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검토하는 등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인 자민당이 함께 우경화 경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그는 "하지만 이런 우경화가 일본인의 감정과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고노 담화의 수정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과거 자민당은 자주헌법을 내세우면서도 스스로 억제해왔다"며 "역사를 중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수의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후 일본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국수주의"라며 "싸구려 민족주의를 독려하는 발언이 국제적으로 통용될지 매우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노 전 장관은 94년 일본의 소선거구제 도입에 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우경화를 가속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자민당은 의원 30%가 온건파였고 사회당과 공명당을 합치면 절반 가량이 온건파여서 정치적 균형이 유지됐다"며 "그러나 선거구당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자민당 내에서 온건파가 줄어들고 보수세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자민당 정권에서 중의원 의장과 관방장관 등을 지낸 고노 전 장관은 93년 "(일본군)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됐고 위안소의 설치ㆍ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구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며 "감언, 강압 등을 통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그러나 아베 총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 등 우익 정치인들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며 고노 담화의 수정 혹은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고노 전 장관은 최근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료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에 슬픔을 느낀다"며 "이런 주장을 계속하면 국가의 신용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