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정현주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정현주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동경)에서 워킹홀리데이 인턴십을 정현주(세종대학교 행정학과)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어제 기증받은 도자기가 도착해서 오늘 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단지 도착한 물건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맡은 업무와 관련되어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더욱 설렌다. 한국문화원 생활에 몰입한 여느 날의 하루이다.

어느덧 골든 위크가 다가오고 있다. 내가 일본에 온 것이 2월말이니 1달 좀 더 지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이 함께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의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일본에서는 어린이날에 코이노보리라는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한다. 어린이 날을 대비하여 아이들과 코이노보리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기구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예상외의 진지한 대화를 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부모님이 돌아오시고 아이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봉사활동 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 말이 나왔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일본에 온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서, 생각해 보니 아직 한 달정도 밖에 안지났다.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 도착하고 나서 여러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시작한 나전칠기 전시회, 대구시향콘서트 일본방문공연, 말해보자 한국어 고교생 전국대회, 원장님 주최의 산책, 1주년 기념 콘서트, 대사관 파티등등 다양한 행사를 접해볼 수 있었다. 성격이 다른 각각의 행사에서는 다른 면들을 배울 수 있다.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일에 접했을 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에 부딪혔을 때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또한 여러 계층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전칠기 오프닝을 하고 보러 오신 분들과 이름만 대사관인, 그러나 대사관만큼 유명하다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하고 , 그 일로 알게 된 전무님과 록본기 힐즈에서 럭셔리한 양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나이의 벽을 잊고 터놓고 얘기도 나누기도 했다. 대구 시향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직원분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일이 아닌 사생활의 털털한 모습을 엿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통해 만난 분은 제2의 인생을 펼쳐가는 분이었다. 한국어 관련 경력이 높으신 교수님과 경력 관리에 대한 말씀을 듣기도 하고, 산책 행사를 통해서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아주머니 들과 한국 꽃놀이 & 불꽃놀이 행사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일하는데 시간을 뺐기지는 않았는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말과 저녁을 이용해서 관광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한국어에 너무 관심이 많은 친구와 시부야에서 쇼핑도 하고, 코스요리를 시켜서 한참 수다도 떨었다 . 

방송계에서 일해서 왠만해선 약속을 잡기 힘든 친구와는 오다이바를 다녀왔다. 도쿄를 한바퀴 돌며 드라이브를 하고 마지막으로 연예인이 많이 가는 일식 식당에서 야경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했다. HIPPO라는 외국어 동아리의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흉내내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얘기도 나누고 활동이 끝나면 홈스테이를 경험하면서 일본의 가정을 목전에서 느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방송 시스템이 궁금해서 버라이어티 방송의 방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본 방송국이 한국보다 훨씬 큰 느낌이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인턴쉽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 친구들과 홈파티를 벌였다. 일본에서 인도, 프랑스 요리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한일교류회에 참가하여 한국, 그리고 일본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꽃구경 시즌에는 명당자리를 찾아서 꽃놀이도 했다. 가끔은 교외로 멀리 나가기도 하고, 도쿄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바로 집 옆에 있는 도쿄 돔으로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카나가와에 사는 친구와 국제아니메페스티벌에서 만나기도 하고,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가 알고 보니 유명한 가게인데다가 연예인과 마주치기까지 해서 놀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부지런한 생활을 한 것 같지도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나가서 가르쳐주는 일의 요령등을 익히고 집에 오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은 꼭 챙겨본다고 TV앞에 꼭 붙어있는다. 가끔은 책을 읽으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없는 자격증이라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날도 있다. 늘 움직이는 걸 귀찮아해서 뒹굴뒹굴 거렸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턴 생활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인 친구는 워킹비자로 왔는데 온지 6개월이 지났는데 알바하고 집에 와서 티비 본 거 말고는 한게 없다고 푸념을 한다 . 시간이 너무 빠르다며 같이 한숨쉬고 있는 나를 친구는 너는 다르다며 부럽다 부럽다 한다.

 

이 곳에 와서 만난 많은 한국, 혹은 중국인 친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아르바이트에 보내고 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두근거림은 어디로 가고 그들 얼굴엔 그늘이 가득하다. 그들을 보면 나 자신은 참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턴 생활을 한다는 선택, 한가지를 달리했을 뿐인데 무엇이 이리 다른 생활을 하게 했을까? 그럴수록 문화원 생활을 통해 만나는 인연들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내가 우연하게 <한일사회문화포럼>이라는 단체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흔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 와서 식당이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간다고 하는데,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내 스스로가 성장하는 1년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주말에는 같은 숙소에 사는 친구들과 파티가 있다.

중국 친구들이 많아서 영어로 말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벌써부터 두근두근 거린다. 내 일본 생활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나에게 이렇게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 준 비영리민간단체 <한일사회문화포럼> 관계자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