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전 청구권 협정이 '불행의 씨앗'

 
 
 

[이슈 in 뉴스] 46년전 청구권 협정이 '불행의 씨앗'
●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부 "협정 당시 위안부 논의조차 안돼"
日 "끝난 사안" 사실상 양자협의 거부
日측 몰염치에 우리 정부도 장기간 방치

유병온기자 rocinante@sed.co.kr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측의 양자협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군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측의 몰염치한 태도가 핵심적인 걸림돌이지만 지난 1965년 이후 이를 사실상 수수방관해온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자협의를 둘러싼 양측의 지루한 샅바싸움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양자협의 성사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16일 일본 현지언론에 따르면 야마구치 쓰요시(山口壯) 외무성 차관은 기자회견에서 "1965년 국교정상화 때 청구권 문제가 법적으로 최종 해결됐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위안부와 원폭 피해자 문제와 관련, 한국의 양자협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구권 협정 제2조 3항이 '불행의 씨앗'=군위안부 문제가 주요 분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 침략기에 자행됐던 위안부 징집은 오랜 기간 수면 아래 잠복돼 있다가 1990년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가 세계 최초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됐다. 그해 11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족되면서 한일관계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맺은 '청구권 협정'에서 일제 침략기 동안 발생한 모든 행위에 대한 한국인의 청구권 행사가 소멸됐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 협정 제2조 3항에는 '계약 체결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은 계약체결 전 발생한 사유에 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협정체결 당시 위안부 및 원폭 피해자 등의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은 만큼 이는 청구권 협정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협정 당시 포함된 '대일청구 8개 항목'에는 징용ㆍ징병자 미지불금 등이 언급돼 있지만 위안부나 원폭 피해자 문제는 거론돼 있지 않다. 

국제 법률에 정통한 한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crime against humanity)'에 포함되는데 국제법이 발달하지 않은 1965년에는 이 같은 개념 자체가 없었다"며 "침략기 당시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국내외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나=외교통상부는 그동안 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다각적으로 노력해왔다고 주장한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1990년 이후 한일 간 외교장관 회담이나 정상회담 등 고위급 협의를 포함, 각종 외교 채널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위안부 강제징역ㆍ사역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인정한 이른바 '고노 담화'도 이러한 논의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책임이 있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표명이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소송 패소 이후 2005년에야 나왔고 김영삼 정부 때는 "도덕적 우위에 서기 위해 일본 측의 보상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논란을 덮기도 하는 등 문제해결을 기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정부의 노력 부족은 해외 사례에 비춰봐도 확연하다. 국제적으로는 2007년 미국 하원의 만장일치로 일본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고 2008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도 "위안부 동원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사죄 및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