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에 있고 일본학교에 없는 것

 

2012년 01월 28일 (토) 15:09  제이피뉴스

조선학교에 있고 일본학교에 없는 것

나는 일본에서도 여러 포털 사이트,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시사와 경제 분야가 중심이어서 사회문제에 관해서는 좀처럼 쓸 기회가 없었다. 기회를 찾던 중 A뉴스라는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그 기사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고 추가하여 한국에도 소개하고자 한다. 

19일 아침, 도쿄에서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있던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그것은 홋카이도 초중고 조선학교의 교원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조선학교에 있고 일본학교에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교문 앞에 쌓인 설산(雪山)입니다. 밤에 많은 눈이 내리면 동트기 전에 제설차가 출동하고 가장 먼저 지역의 학교로 향합니다. 아이들의 통학을 위해 교문 앞까지 깨끗이 제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조선학교는 그 작업에 제외돼 있기 때문에 제설차는 조선학교를 그대로 지나쳐 갑니다. 그렇기에 우리 학교 교원들과 축구부원들이 제설 작업을 직접 합니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커다란 설산입니다." 

"겨울은 이제 막 시작해 본격적으로 눈이 오게 되면 설산은 앞으로 2배 이상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문 앞을 지나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게 되어 출입구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삿포로 시에 알리고 제설 작업 요청을 계속해왔습니다." 

"실은 어제 페이스북에 쓰인 삿포로 시청 자료실의 '조선인학교' 파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제설 요청이 무려 1960년대부터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반세기의 세월을 싸워 온 우리 동포. 또한 반세기나 되는 세월을 계속 무시해 온 삿포로 시. 그렇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올해도 2월 7일에 교장 선생님과 어머니회 회장,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장이 삿포로 부시장과 면담하기로 했습니다" 

이 같은 글에 대해 나의 한국인·재일·일본인 친구들은 페이스북 상에서 "이상하다. 세금은 똑같이 거두면서", "반세기나 방치하다니", "실제 있는 이야기인가" 등 차례차례 분노를 표현했다. 

나는 아침부터 몇 번이나 이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날이 밝았을 때 교토에 사는 후배가 "뭐랄까. 이런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눈이 쌓이지 않는 지역이지만). 사람들이 놀라는 게 오히려 더 놀랍네. 보조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바로 이런 거야. 우리가 졸업한 학교의 운동장은 전부 학부모들이 팠거든.(운동장은 배수용 지하수로를 파지 않으며 안 된다) 또 전부 우리가 해왔고. 누구도 도와주진 않았어"라며 사진을 본 감상을 보내왔다. 

나는 일본의 공립학교를 졸업한데다 오사카에 거주하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이는 곳을 알지도 않고, 살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 사진을 나는 보고 말았다. 몰랐던 일을 알게 된 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본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우선 이 사진을 일본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기사를 쓰고 싶다는 의사에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나에게도 아들이 있는데, 일본의 공립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만약 그 학교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눈앞을 지나쳐 가는 제설차를 어떤 기분으로 바라볼 것인가? 모두 똑같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차별하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또한, 이렇게 슬픈 일이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선학교 앞에 쌓인 설산(雪山)은, 조선학교에 관계된 사람들의 여러 생각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반세기에 걸쳐 쌓이고 쌓여왔다. 

이 설산을 녹이는 것은 사진을 본 나, 그리고 이 일본 사회에 사는 당신의 마음이다. 

이러한 취지의 기사를 쓴 후 "공권력이 인종차별을 하는 최악의 나라의 주권자인 것이 부끄럽다", "이런 일은 수업료 무상화라던가 조선학교에서 행하는 교육 내용 이전의 문제다. '일본의 도로'에서 어린아이들이 위험한 사고에 노출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나도 어제 페이스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뻔한 차별의 예이다" 등 다양한 감상이 트위터 상에서 흘러나왔다. 

또한, 페이스북에서는 도쿄에 사는 한 동포 언니로부터 "호쿠리쿠(일본 혼슈의 니가타, 도야마, 후쿠이 현이 걸친 지역)의 조선학교도 같은 처지라고 합니다. 그 지역의 선생님이 복권에 당첨되면 제설차를 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라는 답신이 있었다. 일본에 있는 그 어느곳의 조선학교도 이처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내가 나온 곳도 아닌 조선학교의 일을 자주 기사화하는 것은 조선학교를 통해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가 일본의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현실에서 눈을 외면한다면, 다음으로 배제되는 것은 우리 재일코리아, 그리고 외국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순서가 될 것이다. 

나는, 조선학교 앞을 지나쳐가는 제설차의 운전사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는 것은 죄다. 

다시 한번 쓰겠다. 이 설산을 녹이는 것은 사진을 본 일본에 사는 나, 그리고 한국에 사는 당신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