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1년, 한국인이 일본에 남은 이유

대지진 1년, 한국인이 일본에 남은 이유

제이피뉴스 | 신소라 기자 | 입력2012.03.11 08:54 | 수정2012.03.11 11:01

기사 내용

바로 한 해 전인,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규모 9.0에 달하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거대 쓰나미, 원전사고를 동반하며 일본에 궤멸적인 피해를 안겨줘 많은 이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특히, 지진 직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계속되는 불안 상황은 동일본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매우 불안하게 했고, 실제 동일본 지역에 살던 많은 외국인이 일본을 떠났다. 당시 일본에 있던 한국인도 상당수가 일시 혹은 영구 귀국했다.

올해 2월 22일 일본 법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연말 일본 내 체재 중인 한국, 조선적朝鮮籍 인구는 54만 5천 명으로 작년 같은 시기에 조사한 인구 수보다 2만 592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지속된 기록적인 엔고 현상 이후 한국, 조선적 인구는 한해 1만 명 가량씩 줄어왔지만, 지진이 발생한 올해는 그 2배인 2만여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2012년 2월 22일 일본 법무성 발표 자료 기준)

그러나 아직도 50만 명이 넘는 뉴커머·재일동포가 일본에 살고 있다.

그들은 동일본대지진 후에도 수많은 여진을 경험해야 했고, 흉흉한 뉴스들이 나돌 때마다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뜬소문으로 여기던 뉴스들은 하나둘 현실이 되었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도쿄 곳곳에서도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왜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남아있는 것일까. 또한, 동일본대지진으로 일시 귀국했던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일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지."

혹자는 간단한 문제 아니냐고 했지만, 기자는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이에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섰다.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았다.

(조사 대상: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100명, 조사기간: 2011년 10월~12월)

■[재일한국인 100명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일본에 있는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왜 지금 일본에 있는가?"

한 가지로 딱 잘라 "이것 때문에 여기에 있다"라고 대답하기 힘든 점을 고려, 복수 응답이 가능하도록 했다.

(*응답자 87명, 복수 응답자 6명, 13명은 그 외 응답)

응답자의 64.4%가 '일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과반수 이상이 30대인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지"라는 혹자의 이야기는 정답이었다.

다음으로 '학업 때문에'가 29.9%를 차지했다. '배우자(혹은 연인)나 가족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서'라는 응답도 4.6%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취득한 비자가 아까워서'라는 응답이 8.0%를 차지했으나, 대부분 '일과 비자 때문', '학업과 비자 때문' 등의 복수 응답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응답자들의 현재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은 '그 외 의견'으로 손수 적어준 대답들이었다.

"단지 일 뿐만이 아니라, 이미 생활 전반적 기반이 일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방사능에 의한 암 발병이 걱정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끝까지 가보려 한다."
"배우자와 아이가 일본인이에요. 가족을 남기고 갈 순 없죠."
"5살 때부터 일본 생활을 한 아이가 대학생이어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어요."
"작년(2010년)에 어렵게 일본회사에 내정 받아서 올해(2011년) 4월부터 근무 중이라 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일본에서 졸업한 학교는 한국에서 대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 가면 고졸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선 전공을 살려서 취직할 곳이 없습니다."
"일본에 손발이 묶여서 일본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간절히 원하지만 무리인 듯하다."

이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일본에 남는 것을 선택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정부와 사회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한국에 산다고 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중국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한국인들도 모르는 사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있다. 여긴 후쿠시마 사고 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과연 한국이라면 이 정도로 침착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특히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일본 교육환경에 대한 지지가 인상적이다.

"일본은 대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한국은 인재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선 아이를 낳으면 출산 비용이 지급되며, 중학교 졸업 전의 모든 아이들의 의료비 또한 무상으로 지급된다. 또한, 적어도 아이를 때리거나 상한 걸 먹이거나 하는 무지막지한 어린이집은 없다."
"엄마가 주관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과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주변과 비교당하지 않는다."
"유학생 복지제도가 우수하고, 교육환경과 문화시설이 풍족하다."

이에 향후 언제까지 일본에 체류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비자에 문제가 없다면 계속 있고 싶다"는 대답이 응답자의 45%를 차지했다.

그 외 응답자의 향후 일본 내 체류 예정 기간으로는 1년 미만이 15%, 1년 이상~3년 미만이 13%, 3년 이상~5년 미만이 11%, 5년 이상이 16%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일본 체류 계획은 '원래 계획 그대로다'라는 의견이 83.5%, '원래의 계획보다 귀국을 빨리 앞당겼다'라는 의견이 16.5%로, '3·11 대지진'이 이들의 일본 체류 계획을 크게 뒤흔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참고로 이 설문조사는 2011년 10월부터 12월까지를 조사기간으로 해, 이미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한국으로 떠날 이들은 일찌감치 떠난 후였다. 자의로 남았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남았든, 어쨌든 남은 이들의 응답이라 생각하면 이들에 대한 이해가 쉬울지 모른다.

▶ 대지진이 수도권에 사는 재일한인에게 가져다 준 피해?

1년 전 대지진 당시 일본에 있던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을까.

비교적 피해가 작었던 도쿄에서의 설문조사였기에 지진 자체로 인한 피해는 집안 물건이 파손되는 등 경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일시 귀국으로 항공비와 체류비로 10만 엔~20만 엔 가량의 피해를 봤다는 응답자가 100명 중 13명. 귀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 내 위험이 덜한 지역으로의 피난을 다녀오는 통에 교통비와 체재비가 들었다는 이도 2명이 있었다.

또한, 영구 귀국을 생각하고 살고 있는 집을 급하게 처분했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집을 구할 때 곱절의 비용이 들었는가 하면, 룸메이트의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혼자서 방세를 부담하게 돼 월 5~6만 엔의 비용이 더 들었다고 호소하는 이도 많았다.

귀경길 혹은 피난길에 오르는 동안 수입이 없었던 것은 물론, 갑작스러운 퇴사(귀국) 통보로 그동안 일한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 항공비는 평소의 2배가 넘는 가격까지 치솟았고,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신주쿠, 신오쿠보 일대 상가, 맨션 등은 평소보다 3배에 가까운 거래량을 보이기도 했다.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귀국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내놓는 광고 글, 이미 귀국을 한 룸메이트를 대신할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하는 글, 가전제품 및 살림살이를 헐값에 넘긴다는 글들로 도배돼 있었다.

(*대지진 직후 유학생 커뮤니티에 넘쳐났던 글들 "살림살이 그냥 가져 가세요!")

살고 있는 집을 양도하거나, 룸메이트를 구하는 이들의 광고 글에는 하나 같이 '지진이 와도 끄떡 없는 집', '지진 안전 설계 집'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반대로 많은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귀국하는 통에 며칠씩 영업을 할 수 없었던 신오쿠보 일대 식당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야 했다.

또한, 한국에 들어가는 유학생들은 취업,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지진 직후, 영구 귀국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던 한 유학생은 "한국에 관련 일자리가 거의 없는 전공을 선택했다. 한국에 들어가게돼 4년의 일본 유학이 쓸데없는 짓을 한 꼴이 됐다"고 고백했다.

피해는 상당기간 이어졌다. 지진으로 인한 불경기, 매출 감소로 감봉된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 자체가 문을 닫은 곳도 많았다.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으로 원전 사고 인근 지역 식품은 되도록 피하고, 한국 식료품을 공수하는 등, 지진 전에 비해 식비가 적게는 2~3만 엔, 많게는 5~10만 엔 가량 증가했다고 대답했다.

그 외 '엔고 현상이 지속돼 학비 부담이 커진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는 의견, '잦은 귀국과 스트레스로 인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이처럼 경제적인 피해 뿐만이 아니라, 심적 불안과 부담, 스트레스를 남겼다. 그렇게 3・11 대지진으로부터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에 남은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 동일본 대지진 전후, 그들의 삶은 무엇이 바뀌었을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먹거리'였다.

100명 중 81명이 '먹거리를 구입할 때 생산지를 확인한다'고 응답했으며, 51명이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온 식료품은 되도록 피한다', 48명이 '한국 수입 제품을 많이 활용한다'고 응답했다. '방사능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이도 21명이나 있었다.

또한, 과반수 이상인 61명이 '관련 뉴스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라고 응답, 원전사고 후 방사능 관련 소식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줬다.

또 '지진 & amp;방사능의 피해가 작은 지역(혹은 건물)으로의 이주를 생각해봤다'고 응답한 이도 100명 중 35명이나 되었고, "실제 이주를 계획 중이다", "실제 거주지를 규슈 지역으로 옮겼다", "지바 쪽으로 이사를 생각했으나 액상화 현상(지진으로 지면이 유체처럼 물렁물렁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다 핫스팟 지역이기에 단념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 '외출을 삼가는 편'이라고 응답한 이도 7명이나 있었다.

한편, "작은 지진이라도 나면 한국에 전화한다. 난 괜찮은데,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대답한 응답자(20대 초반, 유학생)의 말처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보다 연락을 자주하는 편'이라고 답한 이도 20명이나 되었다.

그 외 의견으로는 "지진에 대비해 비상구호품을 비치해 놓았다", "음료, 조리용 물은 지금도 수입품을 사용한다", "쌀은 한국에서, 물은 반드시 생수를 먹는다", "작년 쌀을 100kg 샀다. 생수도 100통 정도를 여분으로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또, "친척이 후쿠시마에 살고 있으나,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어 친척집에 쉽사리 가질 못하겠다", "도쿄에 사는 여자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생각도 안 해본 암 보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주위 일본인의 생활을 소개하는 이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규슈산 야채, 우유 등을 배달해 먹는 가정도 허다하며, 아예 아기를 데리고 아랫지방으로 이주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20대 후반, 직장인)"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전도 지금도 평화롭다. 도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거지?(40대,女)"라는 의견을 비롯해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직후에는 신경을 썼으나, 지금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응답도 20명이나 있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원전사고가 터지고 처음으로 내리던 '방사능 비'의 공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집에 돌아가는 길,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만난 기자는 '이 비를 맞으면 마치 수일 내 죽기라도 하듯' 몸서리치며 편의점이 나올 때까지 미친 듯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집에 와서도 '방사능 비'를 맞은 몸을 벅벅 씻었을 뿐 아니라, '방사능 비'에 젖은 옷을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한동안 수돗물은 입에 대지 않았으며, 식료품의 원산지를 꼼꼼하게 따져 사곤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아무렇지 않게 수돗물을 받아 물을 끓이고 밥을 하며 찔끔찔끔 내리는 비에는 귀찮다는 듯 우산을 펴지도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무뎌진 것이다.

'지금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응답한 20명의 응답자 또한 기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한 응답자는 말했다.
"솔직히 그냥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지진이 났던 것도 너무 옛날 이야기 같고요"

그러나 '만에 하나'를 생각하면,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지금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응답자: 95명, 그 외 의견: 5명)

현재 재일 한국인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가족과 (앞으로 태어날) 자녀의 건강'(35명 응답)으로 나타났다.

이어 '자신의 일과 장래(일본 관련 직종의 장래)', '본인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이가 각각 33명, 20명이었고, 반대로 '한국에 있는 가족의 걱정'이라고 응답한 이가 5명이었다.

그 외 2명의 응답자가 "또다시 대지진이 올 거라는 소문이 가장 두렵다" 등 일본에서의 추가 지진, 원전사고, 화산 폭발 등이 가장 불안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편, "현재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한 이도 3명이나 있었다.

▶ 재일한국인이 "지금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에서 사는 한국인들에게 대지진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들려달라 요청했다.

한 응답자는 지진 당시를 떠올리며 안일한 한국정부의 대처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한국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했어야 했다. 지진 직후, 귀국하는 이들을 위한 항공기의 증편 등 즉각적인 대처가 필요했었다. 당시 동경 서울 간 항공 요금은 10만 엔을 넘을 정도로 치솟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권을 구할 수 없어 아이들을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불편을 겪었다. 대한민국이 아직도 약소국임을 통감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대처에 대한 의견도 눈에 띄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지금 일본의 사태,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왜 화를 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집회 등으로 피력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 내 젊은 지식인들의 안일함에 화가 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설문조사 응답 중 일관되게 "아무렇지도 않다", "뭐가 불안하다는 거냐"는 태도로 일관했던 소수 응답자들은 "(지진 후) 귀국할 생각도 없었고, 딱히 (지진 전과 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설문조사에 참여했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마치 그들을 가리키듯 "일부 나이 어린 사람들은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네요. 조금만 싫은 기사가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고, '이런 기사 올리지 말라'고들 하더군요. 마치 자기최면을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가장 많았던 내용은 정확한 보도에 대한 요구였다.

"일본 언론은 숨기고 있고, 한국 언론은 호들갑이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감추고 있는 정확한 fact(사실)를 알려달라."
"도대체 현재 일본의 위험 수위는 어느 정도인가? 제대로 알려달라. 무언가 속고 있는 느낌이다.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의 이중성을 확실히 느꼈다. 미디어도, 일본인 친구들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지진 후 약 일주일간 마트와 편의점에 식료품이 없었고, 한 달 이상 생수 구입이 힘들었던 점을 보고 정말 소름 끼치게 일본이 무서워졌다"
"나는 지진 이후 가족들의 걱정 등으로 한국에 일시 귀국했다. 그런데 잠시나마 한국으로 돌아갔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정부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나는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인에게도 관대하고 정직하다고 믿어 왔었는데, 그 믿음이 깨져버렸디."

한국 언론에 대한 비난도 많았다.

"대지진과 관련해 한국에 있는 언론 매체는 대체적으로 부풀린 기사를 많이 보도하는 것 같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나로선 그다지 큰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20대 후반, 유학생)"
"신경이 전혀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한국 언론이 너무 호들갑스럽다고 느낄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제이피 뉴스에 정확한 보도를 부탁한다는, 한 응답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도 생활 기반을 일본에 두고, 조심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정확한 사실 보도에 힘써주길 바랍니다."

54만 재일한국인이 지금 가장 바라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정확한 보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