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초고령 사회 日, 슈카쓰 유행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초고령 사회 日, 슈카쓰 유행

서울신문 | 2012.07.02 오전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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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일본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이 급증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는 슈카쓰(終活·임종을 준비하는 활동)가 유행이다.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고 죽음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본다는 데서 노년층이 적잖이 공감하고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노인들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게 없는 사회였다. 장례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일본인들에게 죽음은 가족, 형제, 부부의 공동 문제가 됐다. 

가족뿐만 아니라 남에게 폐를 끼치는 ‘메이와쿠’(迷惑)를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떠올랐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폐가 안 될까를 오랫동안 고민한다. 무덤을 남기면 남겨진 사람들이 그것을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어디에 무덤을 남겨야 하는지, 어떤 형태로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고 뼈를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를 몇년 동안 숙고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고령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누가 해 줄지, 이생에 남기는 자신의 짐들은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을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최근 들어 슈카쓰를 배우는 강좌도 늘어나고 있다. 슈카쓰 카운슬러협회, 시니어라이프매니지먼트협회 등은 고령자가 직면한 간병·의료·상속 관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가르치는 과정을 개설했다. 슈카쓰와 관련된 지식을 측정하는 ‘검정시험’도 실시 중이다.

서점에서는 ‘엔딩노트’를 판매한다. 이 노트는 병이 급격히 악화돼 의식이 없어졌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서부터 장례절차와 장례식 참석자 명단, 자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일기를 쓰듯이 작성하면서 자신의 노후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좌도 곳곳에 개설돼 있다. ‘나 혼자 준비하는 임종’, ‘슈카쓰 핸드북’, ‘인생의 막을 내리는 준비장’ 등 슈카쓰와 관련된 책도 10여종이 출판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슈카쓰 관련 상품들과 업체도 성황이다. 특히 증권회사와 신탁은행이 치열한 고객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 상속업무는 신탁은행이 중심이었지만 2004년 규제 완화로 증권사도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노무라증권이 퇴직 후 자산 운용, 유언장 작성법과 같이 세세한 조언을 하는 세미나를 열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 SMBC닛코증권은 영업직원 4000명을 대상으로 상속지식에 관한 사내자격증을 따도록 했다. 슈카쓰가 본업 격인 신탁은행은 유언서 작성 및 보관은 물론 유언대로 자산을 배분하는 유산정리 서비스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는 매년 상속되는 자산 규모가 50조엔(약 7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들어서는 무덤을 납골당처럼 간소화하거나 ‘데모토 구요힌’(손이 닿는 공양품)이 인기다. 데모토 구요힌은 화장 후 남은 뼈를 곱게 갈아 작은 동상 안에 보관해 가정집 내의 불단 위에 놓거나, 십자가 등 여러 가지 모양의 팬던트(보석을 달아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에 담는 물건들이다. 일본인들은 죽음을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이미 곁을 떠난 사람들도 오랫동안 기리는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