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다이칸야마 스타벅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은.. / 윤수민(청강문화대 플로럴디자인)

 

도쿄 다이칸야마 스타벅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은.. / 윤수민(청강문화대 플로럴디자인)

 

20년 넘게 살던 익숙한 곳을 떠나 언어부터 시작해 생활방식이나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살며, 일까지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어리면 어릴수록 적응은 빠를지 모르겠으나, 고생은 더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또래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고 일본에서의 생활경험도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야 된다는 부담감, 원어민 앞에서 이뤄지는 대화에 대한 걱정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년간의 긴 휴학생활을 끝내고 교수님과의 상담 끝에, 첫 입학하던 그 날 그 마음처럼 오랜만의 학교에 복학을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고 있던 중에, 다달이 들어오던 급여를 포기하고 학생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그다지 학업에 관심이 없는 저에게 쉬운 선택만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전공으로 삼고 있던 학과도 폐과되어 버리고.

 

그런 제가 학교에 복학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해외 인턴쉽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해외 인턴쉽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학점도 받고 해외에서 경력도 쌓을 수 있는 1석 2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복학 준비를 하며 정부의 선발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학교생활도 순탄히 흘러가던 그 때, 문제가 하나 둘씩 연산 작용처럼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으로 인턴쉽을 가던 학생 대부분이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는데, 저는 이미 워킹홀리비자를 사용했으므로 마땅히 인턴쉽 비자가 없는 일본에 입국해서 일을 하기에는 근본적인 비자 문제가 발생했고, 전공과 관련된 업체는 찾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턴쉽을 진행하는 업체의 정보조차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외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준비되어있지 않아 앞길은 막막하기만 하고 업체와의 컨텍이 엎어지길 몇 번.

갖은 맘고생과 우여곡절 끝에, 학교의 국제협력센터에서 소개해준 업체와 MOU 체결까지 하게 되어 비자신청도 끝내고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로 웹을 사용하는 회사였기에 웹 지식에 무지했던 저는 사비로 학원까지 다니며 일본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고생들은 좋은 회사로 가기위한 액땜이라 생각하자. 마음을 다잡고 일본으로 출국해 잘 부탁드린다며 업체와의 미팅까지 끝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었습니다. 전공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비자가 거절되고, 저는 결국 다시 한국으로 소환 아닌 소환을 당했습니다.

지친마음에 인턴쉽을 포기하고 싶어도 이제는 돈 문제가 얽혀있었고, 학교는 이미 학기가 시작되어 중간고사에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일본 인턴쉽을 준비하던 학생들 중에는 정부 지원금을 반환하고 포기한 학생들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담당 교수님 또한 마음 고생하시고, 학교는 학교대로 고생이었을 겁니다. 학교와 학생사이에 신뢰관계는 이미 무너진 상태였고,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 일본 인턴쉽을 희망하고 있는 학생이 상담을 왔다면, 글쎄요. 저는 그나마 무조건적으로 도쿄에 가야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금전적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은 여유가 있었던지라 결국 이렇게 인턴쉽을 진행했지만, 인턴쉽 사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인턴쉽이 무산될 뻔 한 시기에, 저는 '외교부 비영리단체 한일포럼'을 만났습니다.

한일포럼의 중재로 인턴십 비자를 받아서 인턴쉽을 나오게 됐습니다. 한국에 입국한지 겨우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촉박한 그 시간동안 서류를 다시 준비하고 불확실한 비자를 기다리며 짐을 챙기고, 그렇게 저의 파란만장한 인턴쉽은 힘들게 리스타트를 끊었습니다.

 

10월 말부터 진행된 한 달간의 어학. 저 같은 경우에는 어학중심보다는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될 매너를 중심으로 배웠습니다.

회사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메일의 양식이라든지, 전화응대나 명함을 주고받는 방법, 식사와 접대시의 예절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 비즈니스 매너들의 습득은 지금 회사나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고 드디어 11월 26일. 인턴십 기관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제가 인턴쉽을 진행한 곳은 도쿄에 위치한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입니다.

한국문화원, 하고 들으면 뭐하는 곳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입니다. 한국문화원은 한국의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속된 곳은 교육문화홍보팀으로, 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공연, 강연, 영화상영 등의 이벤트 안내를 하고 팜플렛 작업이나 간단한 번역 업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문화원으로 견학을 오시는 분들에게 간단하게 한국 문화를 설명하고 한복을 시착(試着) 해보는 일도 진행했는데, 지금은 부서가 바뀌어 도서영상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도서영상실에는 약 삼 만권의 도서와 이천여장의 DVD가 있습니다. 한국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국적을 불문하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도서와 영상자료를 시스템에 등록하고 도서영상실의 환경을 체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을 포함해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직원 분들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서 묵묵히 힘쓰고 계십니다.

그 분들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제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뿌듯합니다.

회의적이기만 하던 인턴쉽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 건, 아무래도 그런 자부심과 직원들의 따뜻함이 한몫 한 듯 싶습니다.

 

인턴 학생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도 있으며 인턴쉽 기간은 저마다의 학칙에 따라 다릅니다.

1년에 열 명이상의 인턴 학생들이 문화원 생활을 거쳐 갑니다. 일에 적응 될 때쯤, 정이들만 할 쯤 떠나가는 학생들이 애석할 만 한데도 너무나도 잘해주시는 직원 분들 덕분에 저는 인턴쉽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무보수로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수는 근본적으로 책임감과 연결되기도 하고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제치고서라도 인턴쉽 생활을 연장한건, 그만한 매력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3개월의 짧은 인턴쉽 시간을 보내며 진행한 많은 이벤트 중, 가장 대표적이었던 이벤트 두 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매년 일본에서는 문화원 주최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립니다. 한국어에 관심이 있고 말할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가 참여 가능합니다. 매년 높아져만 가는 경쟁률은 그만큼 일본에서 한류가 퍼져가는 것을 반증하는 것과 같아 뿌듯합니다. 저는 문화원에서 진행 된 도쿄 대회의 스텝으로 참여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며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어학기간동안 습득했던 매너 교육이 많은 도움을 줬던 것 같습니다.

참가자 및 손님들의 입장이 끝나고 잠시 공연을 보러 홀에 들어갔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는 그 모습에 홀은 겨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이렇게나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좋아하게 되고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한국사람 누구나가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회가 끝나고 진행 된 다과회에서는 참가자와 스텝, 손님 할 것 없이 서로 친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한국음식을 먹으며 자연스레 대화도 주고받고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사진도 찍고.

 

수줍게 다가와 번호를 물어보고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던 귀여운 고등학생 동생들도 생겼습니다. 저는 일본사람 이무니다, 온니 노무 이뽀요. 서툰 한국어로 쑥스럽게 전해오던 마음들이 너무 예뻐서 몸은 힘들지만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참가자들보다 오히려 제가 얻은 게 더 많은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 전 진행 된 설날 이벤트 입니다. 한국의 설날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로 약 700분이라는 많은 손님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공기, 윷놀이, 투호 등 전통놀이 뿐만이 아니라 탁본 및 서예, 종이 공예, 한복 시착(試着), 세배 체험, 떡국 시식, 떡매 치기 등. 다양하고 많은 이벤트가 진행되었고, 그 중에서 제가 맡은 일은 안내데스크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입은 한복이 어색하게 느껴질 새도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수줍게 건네 오시는 말에 저절로 웃음이 피었습니다. 한복을 입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사진을 찍어드리고, 또 얼마나 많이 찍혔던지.


SNS에 떠돌아다닐 제 모습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지만, 그 작은 사진 한 장으로 설날의 추억 한 쪽을 새겨드렸다고 생각니 새삼 뿌듯해집니다. 감사하다며 즐거웠다고 고개 숙여 진심을 담아 인사해주시고, 수줍게 내밀던 하트모양의 종이접기를 받으며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언어와 달리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문화의 따뜻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문화원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많은 이벤트를 주최하고 또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 이벤트에 다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아직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인턴쉽 생활이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화라는 것은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있어서 인생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철저한 사전준비가 동반된 인턴쉽이라면 저는 과감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아날로그적이고, 그보다 더 많이 꼼꼼하고 정확합니다. 나라의 특성에 맞게 철저히 준비해서, 일본에서 인턴쉽 생활을 꿈꾸고 있는 학생들이 학창시절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인턴쉽의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회를 잡음으로써 더 좋은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저는 과감히 자신합니다. 원하는 자에게 기회가 오고 꿈은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렇게 인턴쉽을 목표로 결국 성공한 저의 경우만 보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목표를 향해 느리지만 묵묵히 앞을 보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인턴쉽을 통해 간단하지만 명료한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