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참고 순대를 먹었던 일본 친구에게 김민정(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짧기만 했던 2박 3일. 워크캠프를 갔다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창가는 버스를 탔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시간이 벌
써 이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다니. 캠프에서의 추억을 더욱 더 오래 간직하고자 이렇게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한일국제워크캠프에 참여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고창과 전주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학교 다니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가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고,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본인 친구나 다른 나라의 친구가 '고창과 전주는 어떤 곳이야?'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 지 생각을 해보았다.

'고창은 고인돌이 있고, 전주는 비빔밥이 유명해.' 정도까지는 말할 수 있겠지만, 역시나 그곳에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싶어서 고창과 전주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인 친구는 물론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한일국제워크캠프의 취지에 맞게 일본인과 친해지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지역과 대학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두 가지 이유, 다르게 말하면 캠프에 참여한 두 가지 목표는 모두다 달성되었다. 굉장히 뿌듯하고 알찬 2박 3일이었다. 먼저 고창에서는 청보리밭 축제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내가 맡은 일은 청보리밭 지킴이로서, 관광객들이 청보리밭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거나 청보리를 꺾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재하는 일이었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제재하기 전에 이미 청보리밭 안으로 들어가거나 청보리로 피리를 만들어서 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한발 늦었긴 했지만 그러한 관광객들에게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세요'라고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주의를 주었다.

 

만약 내가 관광객 입장이었다면 청보리밭에서 사진도 이쁘게 찍고, 기념으로 청보리도 가지고 가고 싶어서 아마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나 하나쯤 청보리밭에 들어가도 아무 상관 없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관광객이 아니라 스탭으로서 청보리를 지키는 입장이 되어보니, 청보리밭이 헤쳐져 있고, 땅에 청보리가 떨어져 있는 것 하나하나가 매우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기분 좋게 관광을 온 것이라고는 해도 단지 즐기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탭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을 법한 일인데, 입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보고 느끼는 게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청보리밭 지킴이 역할을 했던 동생과 청보리밭을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일본어를 공부하게 되었는 지, 일본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흥미가 있는 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이렇게 하나의 일을 같이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기뻤고 신기했다. 또한,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보리밭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일체감을 느꼈다.

다음 날에는 고창 고인돌 박물관과 전주 한옥마을에 갔다. 먼저 고창 고인돌 박물관에서는 박물관과 실제 고인돌이 있는 곳의 거리가 굉장히 멀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고인돌을 보러 갔다. 같이 지낸 지 이틀밖에 지나기 않았는데도 마치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하하호호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사진도 찍고 너무나 사이 좋게 고인돌을 구경했다.

 

고인돌은 내 생각보다는 굉장히 작아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그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 거대한 고인돌이 아니라고 해서 얕볼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다같이 석갈비를 먹으러 갔다. 전주하면 비빔밥인데 이미 고창에서 비빔밥을 먹었기 때문에 대신 또 다른 명물인 석갈비를 먹기로 했다.  다시 먹으러 가고 싶을 만큼 굉장히 맛있었고, 일본 친구들도 마치 자기네 음식처럼 맛있게 먹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서울 삼청동의 한옥마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었고, 모든 건물이 다 한옥으로 되어있어서 마치 사극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지 않고, 거리도 넓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걸어 다니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너무나 여유롭게 한옥마을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나서 장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나타났다. 한국인에게는 자진모리 장단과 같은 가락을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왔었고, 장구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가락이고, 장구도 보기만 했지 쳐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구 연주가 숙달되는 정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나도 장구를 제대로 배운 사람은 아니기에 전문가가 보기엔 나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가락을 신명나게 살리는 것이 일본인 친구들에게는 조금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장구를 쳤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매우 뿌듯하고 기뻤다.

이 밖에도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몇 가지 더 있었다.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일본인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렇기에 매우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 문화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과 확연하게 다르다라는 것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온 친구도 한국어를 정말 잘했었고, 한국 문화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크게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차이점을 얘기하자면, 흔히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본인은 남에게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를 따졌을 때에 일본인이 더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다같이 저녁을 먹었을 때였다. 그때 파전과 순대를 시켰었는데, 누군가가 한 일본인 친구에게 순대를 권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순대를 먹는 것이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대를 못 먹는다고 하던 친구가 그 말을 하는 게 미안해서였던 건지 아무 말도 없이 순대를 먹었다. 만약에 한국인이었다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안하지만 순대는 잘 못 먹는다'라고 말을 했을 텐데, 꾹 참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일본인답다라고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민박집에서 샤워를 할 때였다. 매일 아침 한 명씩 샤워를 했었는데, 샤워하는 공간이 모자라서 일어난 순서로 샤워를 했다.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일어난 순서로 한 것은 아니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그 다음은 내가 하겠다'라는 식으로 순서를 정했는데, 일본 친구들 중에서 '그 다음 내가 할게'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인은 눈치를 보다가도 자기가 샤워할 수 있을 것 같은 타이밍이 오면 제대로 자기 의견을 얘기했는데, 일본 친구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자기가 더 오래 기다렸는데도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런 걸까', '먼저 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미안한 걸까'하고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이상으로 고창과 전주에서 보낸 한일국제워크캠프에 대한 감상을 마치도록 하겠다. 짧게만 느껴졌지만, 그 2박 3일 안에는 여러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하나하나 쓰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기에 가장 인상에 남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써보았다. 고창과 전주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었던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