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들, 진보·보수 갈려 ‘위안부 전쟁’


ㆍ아사히, 32년 전 ‘강제 연행’ 일부 기사 오보 인정에

ㆍ요미우리·산케이 “왜곡된 역사 보도” 등 연일 공세

ㆍ“위안부 본질 안 바뀐다” 아사히 반격… 전면전 양상

일본을 대표하는 신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거친 ‘지면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30여년 전 실었던 일부 위안부 기사가 오보였다고 최근 인정하면서 시작된 이 싸움은 일본 주요 언론들 간 ‘사운을 건 전쟁’처럼 진행되는 양상이다.

“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는 칼럼이 실린 5일자 아사히신문과 아사히의 위안부 보도 ‘오보 인정’을 강조한 6일자 산케이신문.


오랫동안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싸움이 다시 붙은 계기는 일본 최대의 진보성향 신문인 아사히가 지난 5일자 1면과 16·17면에 쓴 기사였다. 신문은 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자신들의 기사가 가진 의의와 취재과정 등을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 ‘2차 세계대전 때 제주도에서 다수의 여성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1982년 9월2일자 기사 등은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 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사히는 “제주도 일대에서 다시 취재를 했지만, 증언을 입증할 것들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일부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1982년 당시 아사히는 요시다의 주장 등을 토대로 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 16건을 게재했다.

아사히는 몇몇 기사가 오보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납치와 같은 연행을 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등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던 다른 지역에서는 군이 현지 여성을 강제연행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확인됐다”며 “(한국·대만·인도네시아 등의 사례에서) 공통점은 여성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됐으며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이래 아사히가 지켜온 입장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성향인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은 기다렸다는 듯 아사히가 오보를 인정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융단폭격을 퍼붓고 나섰다. 요미우리는 28일자 1면과 4면을 할애해 ‘검증, 아사히 위안부 보도’라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했다. ‘허구의 강제연행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요미우리는 “아사히가 위안부 강제연행 기사를 32년 만에 취소했다”며 “아사히의 보도는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왜곡된 역사를 퍼뜨리는 계기였다”고 비판했다.

요미우리는 32년 전 아사히 기사의 게재 일자·지면·내용 등을 표로 만들어 싣는 등 사실상 아사히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아사히 보도를 ‘검증’하는 특집기사를 실은 요미우리신문 28일자.


이 신문은 27일 사설에서 아사히의 오보 인정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대체하는 새 담화를 정부가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사히를 더욱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극우언론인 산케이신문이다. 산케이는 이미 1992년 4월 요시다의 증언에 의문이 있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실제로 산케이의 이 보도는 아사히가 기사를 스스로 검증하고 오보를 인정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산케이는 지난 8일 아사히 기사 검증 특집을 실은 데 이어 28일 사설에서는 요미우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담화 발표’를 촉구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아사히 오보 사건을 집중 공격하며 ‘위안부 모집 과정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침묵하던 아사히는 반격에 나섰다. 신문은 28일 “일부 기사를 취소했어도 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며 보수언론들을 논박했다. 아사히는 요시다 관련 기사가 취소됨으로써 고노담화의 근간이 무너졌다는 주장에 대해 “애당초 고노담화에는 요시다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 전 도시샤대 교수는 “강제성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며 아사히의 일부 기사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수언론의 공세로 국제사회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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