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분 두분 떠나고 55명만 남아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고사리 손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4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115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사진을 들고 서있다. 2014.12.31 saba@yna.co.kr


"한맺힌 외침 속히 끝나길"…추모제로 열린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고(故)황금자 할머니, 고 배춘희 할머니.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눈을 감으시게 해 죄송합니다. 내년엔 가슴 속 응어리를 꼭 풀어드릴게요."

올해 마지막날인 31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가 개최됐다.

수요집회가 23돌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이날 열린 제1천159번차 집회는 시민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해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고 황금자·배춘희 할머니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로 열렸다. 

올해 황금자·배춘희 두 할머니가 사망함으로서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모두 55명(국내 50명·해외5명)이다.

헌화 마친 할머니들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4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115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길원옥(왼쪽)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가 헌화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4.12.31 saba@yna.co.kr


제단 중앙에는 환한 모습의 두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노란색 나비로 장식돼있었고, 양 옆으로 사진 대신 '이름없이 희생된 일본군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빈 액자가 놓였다.

두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고 묵념을 하며 집회가 시작됐다. 이날도 어김없이 수요집회를 지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천천히 일어서 두 할머니 앞에 연분홍빛 카네이션을 놓았다.

그 뒤를 따라 교복 차림의 학생, 부모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 정장 차림의 직장인과 외국인 등이 줄 지어 헌화해 영정 앞은 이내 꽃이 수북하게 쌓였다. 

음악이 낮게 깔렸고,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눈시울과 코 끝이 붉어진 사람들은 꽃을 두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추모사 낭독에 이어 생전 할머니들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할머니와의 추억 한 자락씩을 풀어놓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황금자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 봉사활동을 했다는 최은영씨는 "생 마감 전 2년 7개월 동안 말도 못하시고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한 채 줄곧 병원 침대에서만 지내시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헌화행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4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115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14.12.31 saba@yna.co.kr


그는 "할머니의 굽은 등과 앙상한 몸을 볼 때면 늘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가끔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세게 치실 때는 가슴이 아팠다"며 "그 가슴의 한을 못 풀어드려 죄스럽기만 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눔의 집'에서 일하면서 배춘희 할머니를 만났다는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씨는 "배 할머니는 노래를 참 좋아하고 옷 차림새에도 개성이 있는 재주 많은 분이셨지만 과거 겪은 아픔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많이 느끼셨다"고 추억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배 할머니를 좋아했고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며 "하늘 세상에서 잘 계실거라 생각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올해는 첫날인 1월 1일 수요집회를 열었고 마지막날인 오늘도 수요집회로 마감하는 특별한 해"라며 "하지만 결국 할머니들이 원하는 일본정부의 공식사죄과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넘기게됐다"고 말했다. 

윤 상임대표는 "내년이면 수요집회가 23돌을 맞는데 더 이상 집회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며 "해방·2차대전 종전 70주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이기도 한 내년에는 할머니의 뜻을 꼭 이뤄드리자"고 강조했다.

s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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