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논쟁 2라운드…왜 이 책을 쓴 걸까

2014년 2월1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시민들이 대사관 앞 소녀상에 꽃분홍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혀주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에 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내 심장을 내주고 상대 머리털도 건들지 못한…’

▶ 한국 사회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찬반으로 둘로 갈라진 상태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낡은’ 민족주의에 대한 찬반에서 시작된 이번 논쟁은 17일 법원에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놓은 뒤 ‘표현의 자유’ 이슈로까지 확장되고 말았다. 치열한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돌아보려는 시도는 줄어들고 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시도한 것일까. 그리고 이는 과연 성공했을까?

지난 설날 연휴,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한국 소셜미디어(SNS)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일문학)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2013년)를 둘러싼 이른바 ‘표현의 자유’ 논란이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7일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고충정)가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이 박 교수 등을 상대로 한 도서출판 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 대해 할머니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34곳의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판매·배포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삭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부분은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지적인 관계였다” 등 그동안 이 책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의 핵심이 되는 구절들이었다.

조선시대의 ‘예송 논쟁’과 같다

판결이 나오자 인터넷 공간은 이에 대한 찬반으로 금세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소 한국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매서운 비판을 해 온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그나마 위안부라는 미증유의 범죄를 우리가 피해자 위주로 의식해야 한다는 게 통념화되고 이 통념이 이번 판결에 반영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 견줘, 강남순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는 “책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책을 읽는 시민들 스스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강제적으로 ‘못 읽게’ 만드는 것은 독재정권하에서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무수한 ‘금서’들을 지정하던 모습을 상기하게 한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법원에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범위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참으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박유하 교수는 판결이 난 뒤 “삭제하면 출판해도 좋다고 하지만, 나는 한 곳도 삭제할 생각이 없다”며 이 문제를 본안소송에서 계속 다퉈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 누리꾼이 이번 논쟁에 대해 조선 현종 때 이뤄진 ‘예송 논쟁’(인조의 계비인 조대비(趙大妃)의 상례(喪禮) 문제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두 차례에 걸쳐 대립한 사건)과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듯이 위안부를 다룬 다소 딱딱한 ‘교양서’에 한국 사회가 보이고 있는 지금과 같은 격렬한 반응은 분명히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이 책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제2라운드라 부를 수 있다. 처음 논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 책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다음이었다. 사실 이 책은 2013년 8월 처음 공개되었을 땐 위안부 문제를 고민해온 학계나 시민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소송이 시작돼 이 책에 담긴 위안부에 대한 여러 묘사와 표현들(특히, 동지적 관계)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한국 사회가 공유해온 일반적인 상식이나 법 감정 등과 충돌을 빚으며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논쟁의 층위는 실로 복잡하고 다양했다. 박 교수가 활용하고 있는 위안부에 대한 증언과 자료 인용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방법론 논란, 위안부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한 호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기존 위안부 운동 단체의 운동 방식에 대한 찬반 등에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에 의한 ‘범죄’라기보다는 식민지 조선반도를 지배했던 ‘가부장적 틀’에서 보자는 박 교수 주장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반응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중첩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진행한 고노 담화(1993년) 검증 등 역사 수정주의적 움직임이 한국에 전해지며 논쟁은 더 치열하고 과격해져 갔다.

그러나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의 “검토 대상이 애매한데다가 이용되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정영환 일본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때문이다. 책이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매우 모호한데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기술들이 책의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찬반 논쟁에 발을 들여놓은 많은 이들은 서로를 향해 “책을 읽어봤느냐”며 삿대질하고 있으며, 같은 구절을 읽으며 정반대의 해석을 이끌어 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34곳 표현 삭제 뒤 판매’ 결정난
위안부 할머니들 가처분 소송
복잡하고 다양한 논쟁 층위 속
치열하고 과격해지는 찬반 논란

박 교수는 이 책을 왜 집필한 것일까.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자. 저자는 자신이 2005년 펴낸 <화해를 위하여>에 담긴 일부 구절을 인용해가며 “위안부 문제는 왜 1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 주변국의 비판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면 이제까지 비판의 형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데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고 적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를 일본한테서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서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서문에 담긴 바로 이 ‘해결’이란 단어다. 그가 책을 쓴 이유는 위안부 문제가 10년을 넘어 이제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왜 우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그런 불편함과 아픔을 거치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치열한 외교적 교섭을 이어왔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에 ‘성의 있는 선조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선조처는 한국 사회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가 당시 일본군에 의한 범죄였다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배상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지난해 6월16일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제국의 위안부’ 책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 책을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와 출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14.6.16 / 서울=연합뉴스

이를 위해 지난 20여년 동안 한·일의 위안부 운동단체들과 학자들은 위안부의 동원 과정, 위안소의 설치·운영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밝히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그간 오랜 논쟁을 거쳐 최근 한·일 양국이 다시 돌아온 결론은 일본 정부가 길 가던 여성들의 머리채를 끌고 납치하는 식의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고노 담화에서 적시된 “위안부의 모집·이송·관리 등도 감언·강압을 통해 이뤄지는 등 전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심으론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싶은 아베 정권이 결국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압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화 자체를 부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업자의 책임’에 꽂히다

이 지점에서 박 교수는 일본 우익이 아니면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참으로 독특한 도전에 나선다. 즉,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법적 책임을 추궁하려는 기존의 학자와 활동가들과 달리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논증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박 교수는 위안부 동원 과정에 적극 개입한 (특히 조선인) 업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가녀린 소녀’라는 이미지 속에 가려져 있는 “일본 군인과 연애도 하고, 위안을 애국하는 일로 생각하기도 했”던 ‘진짜 위안부’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가부장제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역시 위안부들이 그 같은 고통을 받은 1차 원인은 당시의 불행했던 사회상 탓이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그러나 그러면서 틈틈이 “타지에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쟁을 벌임으로써 거대한 (성적)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일본은 이 문제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첫번째 주체다”라고 강조하는 등 이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를 만든 구조적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있지만, 그것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실마리인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인신매매에 대한 군의 묵인과 위안소 설치에 대한 군의 지시 등에 대한 언급은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어 박 교수는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정대협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정대협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운동의 정의를 위해 ‘20만명의 가녀린 소녀’라는 “하나의 고정된 위안부의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실제론 일본을 ‘용서’하고 ‘화해’할 의사가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낮은 목소리들을 사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합방(한일 병합조약)이 양국의 조약 체결을 거친 것이었으니 법적으로는 유효했”으며 “식민지배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타국 국민 동원에 관한 배상”을 통해 위안부들에 대한 배상을 주장할 수 없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돼 개인 보상을 요구할 근거도 없어졌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일본어판의 후기에서 다시 한번 “위안부 문제의 이해와 해결의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한-일 관계는 지금 이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애타게 호소한다.

그렇다면 박 교수가 말하는 ‘해결’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추정해 볼 대목은 있다. 먼저 박 교수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에 대한 후속 조처로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1995~2007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은 이 기금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한 사람에게 위로금 200만엔(일본 국민들의 성금)과 의료지원금 300만엔(일본 정부 예산)을 지급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의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을 인정했다며 이 기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이 기금의 전무이사로 활동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과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제3의 목소리’라는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다.

일본 정부에 1차 책임 있지만
명백한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 우익 주장 수용한 박 교수
기묘한 논리의 선의는 있으나
해결과는 거리 먼 허무한 시도

박 교수는 책 속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발생한 문제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며 “보상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 지원단체와 위안부를 참여시켜야 한다” “사죄와 보상을 한다면 세계를 향해 일본의 생각을 밝히는 공식적인 형태를 띠어야 한다”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지급상황에 대한 미공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정부 국고금으로 보상에 나선다면 그런 정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언급들을 종합해 볼 때 박 교수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란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한테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사죄금을 지급하고,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논쟁이 거세니) 일본이 도덕적인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일본의 책임이라고 인정”하자는 와다 명예교수의 제안(<한겨레> 2014년 3월5일치 6면)이나 2012년 이명박-노다 정부 말기에 논의된 △노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무토 마사토시 주한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해 사죄하며 △정부 예산을 들여 보상을 한다는 타협안과 흡사한 주장임을 추정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일본어판에서는 여기에 더해 일본 국회의 결의가 필요하다며 요구 사항을 조금 더 높인다.

우리는 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원했는가

결국, 이 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해주자는 얘길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양국 간의 이견을 좁힌 뒤, 일본 리버럴들이 요구하고 있는 타협안+α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토록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바라왔을까. 전시하 여성에게 강요된 씻을 수 없는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가 엄격히 책임을 지도록 추궁해 인류 사회에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일본에 들이댄 그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 ‘기지촌 정화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미군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전쟁 시기에 이뤄진 한국군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엄격히 추궁해 가야 한다. 결국, 박 교수가 제시한 기묘한 논리의 선의를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내 어깨를 내주고 상대의 심장을 찌른’ 묘안이 아닌, ‘내 심장을 내주고 상대의 머리털도 건들지 못한’ 시도였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박 교수의 주장을 활용해 세계를 상대로 한 ‘역사 전쟁’에 나서겠다는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위안부 문제 해결의 전망은 <제국의 위안부>가 나오기 전과 비교해 조금 더 어두워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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