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50년 전문가 제언> 나카마사 "전후처리 마침표 없어"

한일수교50년 제언 인터뷰하는 나카마사 교수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의 독일 연구 전문가 나카마사 마사키(52·仲正昌樹) 가나자와(金澤) 대 교수가

지난 1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5.3.22 jhcho@yna.co.kr

"日, 법적·도덕적 책임 나눠 대처한 獨 벤치마킹 필요"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과 독일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나눠 대처하고, 전후(戰後) 처리 문제를 긴 과정으로 보고 하나씩 과제를 줄여나간 독일에게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독일 연구 전문가 나카마사 마사키(52·仲正昌樹) 가나자와(金澤) 대학교수는 지난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또 독일-프랑스의 화해 배경에는 역사적 뿌리 공유, 냉전시기의 협력 필요성, 훗날 유럽연합(EU)으로 연결된 '공동 번영'의 미래상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한일도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함께 추구할 '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나카마사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지난 9∼1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많다. 전후 보상, 과거사 청산 문제와 관련한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무엇인가. 

▲독일의 전후 보상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은 보상했으나 어디에 초점을 맞출까 하는 것이 애매했다. 

일본 정부로선 폐를 끼친 것은 틀림없으니 어쨌든 보상했다는 것이었지만, 초점을 흐릿하게 하는 게 일본 사정에도 좋았고, 받은 나라의 정부도 무엇에 대해 보상받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편이 낫다는 사정이 있었다. 

다시 말해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범죄에 초점을 맞춰 보상했지만 일본은 돈을 내면서 무엇에 대해 낸 것인지 불분명했다. 그런 인식이 일본 측에도 있었고, 보상을 받은 측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일본에는 원폭이 투하됐기에 보통 일본인들 사이에 '피해자 의식'이 독일보다 더 널리 확산했다. 그리고 나치의 피해를 본 유럽 국가들에서는 1차대전의 경험상 '독일을 너무 몰아붙이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작동했다. 게다가 2차대전 이전 독일-프랑스 사이에는 오히려 프랑스가 침략한 경우가 더 눈에 띄었다. 전후보상의 '원점'에서 독일과 일본은 달랐던 셈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731부대, 난징(南京) 대학살, 군위안부, 강제징용 등에 대해 법률적인 것과는 별도로 사과와 보상을 독일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나 중국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나도 법률적인 것과 별개로 어떠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문제는 일본의 보수 정권이 별로 그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보수 인사들 중에서도 '군위안부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노담화(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가 나온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보수진영에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진영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만약 잘못을 인정했다가 법률문제가 되면 훗날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아베 정권 안에서도 정말로 '식민지 지배가 다 정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법률의 문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한다.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보면 전후 보상 문제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독일과 프랑스 관계가 지금의 한일, 중일 관계에 주는 교훈 등이 있다고 보나.

▲프랑스 쪽이 조금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두 나라가 거의 동시에 근대 국가가 됐고, 국민 국가가 되기 전후부터 서로 상대에게 폐를 끼쳤다. 그러나 자신들 역사의 기원이 나란히 프랑크 왕국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상대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도 되기에 그것은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서로 잘 안다. 서로 협력해야 유럽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더욱이 독일과 프랑스는 모두 동서 냉전의 최전방에 있었다. 동서 냉전의 위협 때문에 계속 맞설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독일 자체가 동서로 나눠졌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에 관해서는 프랑스가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독일을 약체로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공통의 이익이 있었다. 유럽연합(EU)을 생각해 보면 독일과 프랑스라는 서구의 핵심 국가가 협력했기에 가능했다. 부(負)의 역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랑스러운 문명의 역사라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배경 아래 독일은 자신들이 적어도 2차 대전에 관해서는 가해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프랑스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취했다. 구체적으로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귀속하는 것을 인정한 것이 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통분모를 찾는 데 성공했다. 

일본·한국의 경우는 무언가를 공유하며 함께 번영했다는 긍정적인 기억이 많지 않다. 198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일한 관계는 양측 보수 정권 사이에 아주 잘 됐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지만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내각 때 가장 친했다. 그 이유는 공통의 이익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냉전에 따른) 위기감이라는 점에서 일한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일한 기본 조약 때도 서로 그런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독일과 프랑스 관계는 개선의 필요성과 적극적인 미래 지향이라는 점에서 모두 현실감이 있었지만 일한 관계에서는 그런 것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일한 모두가 내심 바란다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중국의 민주화, 북한의 체제변화 등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본이 독일의 전후(戰後) 과거사 정리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

▲독일의 전략은 도덕적 책임과 법적·정치적 책임을 잘 나누는 것이다. 그걸 일본도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그런 문화가 아닐지 모른다. 일본 보수인사들은 도덕적으로 잘못이 있다면 정치적, 법적으로 책임을 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 중국으로부터 그런 소리(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들을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를 총괄한 뒤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상 등)은 이런 것들이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나누기가 어렵다. 역사인식 문제도 정치적 책임을 질 일은 이런이런 것들이고, 도덕적으로는 이런 이런 일들이 '죄'였다는 것을 잘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전통이 일본에는 별로 없다.

나는 고노담화와, (한반도에서의 군위안부) 강제 연행이 실제 있었느냐는 것이 반드시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리하면 좋겠다. 정말 강제연행이 있었느냐는 것은 역사 연구가에 맡기고 과거 위안부였던 사람들에게 법률과는 별개로 일본 측에서 뭔가 보상을 하면 되는데, 과거 아시아여성기금 같은 것이 좌절되지 않고, 그것을 한국 정부도 좋은 프로젝트라고 인정해 줬다면 사안은 정착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 사례를 보면 2차대전 후 독일은 전쟁시기 타국 사람들을 강제노동시킨 일 등에 대해 홀로코스트 희생자와는 별도의 틀에서 공동의 기금을 만들었다. 공동기금이라고 하지만 실제 돈은 독일 정부가 거의 전부 냈다. 

--메르켈 총리가 일본 방문 때 발신한 메시지를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설교하는 듯한 말은 하지 않았다. 특히 '(가해국과 피해국간) 역사 문제는 완전히 종결될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기본 조약 체결 때는 인식되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른다.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이것이 끝'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해결책이 없어진다.

독일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로부터 어떤 요구를 받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실제로 항상 대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문제, 유대인 문제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성애자 강제 단종(斷種), 정신 장애자 박해 등이 뒤늦게 나왔다. 독일은 그것들에 나름대로 대응하면서 '우리가 어떤 틀을 만들면 무리 없는 보상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왔다. 

--일본도 그런 면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역사문제에서 완전한 해결이라는 것은 없지만 하나씩 풀어 가면 점점 (해결할 과제가) 줄어드는 것은 틀림없다. 독일도 요구받은 것을 다 이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계마다 최대한 대응을 하고 있기에 조금씩은 과제가 줄었다. 일본도 독일이 해온 일로부터 '조금씩 (해결할 과제를) 줄일 수 있구나'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사이에는 군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 청산되지 못한 전후 보상 문제가 있다. 일본은 몇 번이나 사과했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해결할 방법은.

▲한국과 대만에 관해서는 일본 측이 '함부로 식민지화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표현이 직설적이지 않다. 식민지 지배는 열강이 되기를 원한 여러 나라가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른 나라의 주체성을 빼앗는다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유감스럽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다. 일본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이다. '죄'였다고 말하는 것은 서구같은 기독교 문화가 없는 일본에 맞지 않는다 해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말은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무라야마담화(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로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는 한국인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하지만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발언이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으로 미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국인들이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통해 이런 의심을 해소하는 게 좋다고 보는데. 

▲무라야마담화를 그대로 계승한다고 했을 때 한국인들이 납득하리라고 확신하면 그렇게 하겠지만 아베 총리는 그 확신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계승한다고 하면 '(한국이) 무언가 말할 것이다', '다음에 뭔가 따라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고 두려워하기에 계속 버티는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정말 전면적으로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면 일찌감치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산'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가 '침략'이나 '식민 지배'라는 무라야마담화의 '키워드'를 얼버무리지 않을까 한국인은 우려한다.

▲아마 재특회(일본내 대표적 혐한단체) 회원 외에, 대다수 일본인은 '침략은 침략'이라고 생각한다고 본다. 아베 총리의 파벌도 속내로는 '침략은 침략'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후환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 때문에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상으로 한국을 화나게 하고, 관계를 나쁘게 만들려는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양국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간단히 말하자면 정상회담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가기 위해서 일한이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유교 등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공동의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다. 한일간 자유무역협정(FTA)를 먼저 체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양국을 잇는 해저터널 같은 프로젝트로 뭔가 꿈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엄청난 기폭력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은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표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고 아베 총리도 연설에서 이를 제외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것이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흔들어 관심을 두게 하려는 것 같다. 

■나카마사 마사키= 도쿄대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독일 연구와 본격 인연을 맺었다. 1995∼1996년 독일 만하임대학에서 유학한 뒤 1998년부터 가나자와대 법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독일 관련 저서로는 '일본과 독일-2개의 전후(戰後) 사상(2005년)', '일본과 독일, 2개의 전체주의-전전(戰前) 사상을 쓰다(2006년)', '현대독일사상 강의(2012)' 등을 펴냈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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