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피폭자소송지원 40년' 이치바 씨 "해야할일 했을 뿐"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59·市場淳子) 회장이 8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온 뒤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59·市場淳子) 회장이 8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온 뒤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전화인터뷰서 '재외피폭자에 동등한 의료비 지급' 日대법판결 소회 밝혀

"건강진단·간병수당 지급까지 실현되도록 日정부와 협상할 것"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외국인(한국인)이 피해를 봤지만,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는 일본인입니다. 가해자의 나라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일본 시민단체인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59·市場淳子) 회장(오사카 거주)은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약 40년간 한국인 피폭자들의 소송을 지원해온 이치바 회장은 재외 피폭자에게 일본 내 피폭자와 마찬가지로 의료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8일)을 유도한 숨은 공신이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국인 피폭자들과 변호인단에 공을 돌리는 한편, 향후 일본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한국내 피폭자에 대한 건강진단, 간병수당 지급 등 남은 과제들까지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불태웠다. 

이치바 회장은 간사이(關西) 지역 소재 한 대학에 재학했던 1970년대,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 원폭 피해자 중 한반도 출신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큰 충격을 받은 것을 계기로 줄곧 한국인 피폭자 지원에 매진해왔다. 

한국인 피폭자들이 피폭 전 일본에서 어떤 삶을 영위했으며, 피폭 이후 고국 또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심층적으로 다룬 책 '한국의 히로시마'를 펴내기도 했다. 

다음은 이치바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8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피폭자 원호법(일본법)을 평등하게 적응하라는 소송을 한국 원폭 피해자를 중심으로 약 40년간 계속해 왔고, 드디어 의료비라는 지원이 (차별없이) 이뤄지게 됐다. 피해자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가장 늦게 40년이나 지나서 인정됐다. 지금 살아계신 한국인 피폭자분들이 적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생존자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 실현된 만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여생을 의료비 걱정없이 보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판결의 의의가 크다.

'피폭자 건강수첩'을 교부받은 피폭자라면 어디에 살고 있든 원호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시한 판결이었다. 피폭자 원호법 중 아직 재외 피폭자에게 적용되지 않은 것이 7조의 건강진단과 31조의 개호(간병) 수당 지급이다. 의료비 지급뿐만 아니라 아직 시행되지 않은 건강 진단과 간병 수당 지급도 조속히 시행하라는 것을 어제의 판결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승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의료비 소송을 담당한 변호인단이 오사카 지법, 오사카 고법에서 매우 훌륭한 변론을 해왔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원고 측의 변론이 허술하면 이길 수 있는 재판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 피폭자들이 수십년간 굳건히 싸워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떤 마음으로 외국인인 한국인의 피폭 문제에 천착하게 됐나. 

▲외국인이 피해를 보았지만,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는 일본인이다. 가해자의 나라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재판을 안 해도 되도록 일본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가며 협상을 통해 후생노동성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우선 방침이다. 재외 피폭자 의료비는 얼마나 조기에 지급 절차를 완비하느냐가 남아 있지만 이미 8일 판결로 해결된 것이다. 나머지 건강진단과 개호 수당을 실현함으로써 완전하게 평등한 법 적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과제다. 이제까지는 재판으로 해왔지만 생존 피해자들도 고령인 만큼 남은 과제에 대해서는 협상을 통해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고 싶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 바라는 바는 없는가. 

▲한국 정치권에는 원폭피해자지원 특별법 법안을 통과시키길 기대한다. 한국 정부에는 하루 빨리 군위안부 문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주한) 사할린 동포 문제와 함께 피폭자 문제(피해자 구제조치 등)를 일본 정부와 협의해 잘 해결하길 바란다. 

--전후 70주년을 맞이한 일본이 최근 원폭 피해만 강조하고 전쟁 가해국이었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모임은 한국의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인데, 일본 피폭자 운동이 그 피해만을 강조하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괴상한 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8일 최고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한국 원폭 피해자에게 의료비 전액 지원을 하게 된 일은 곧 '일본의 원폭 피해자 운동이 일본은 피해자라는 사실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운동에 임하고 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 전망이 나오는 등 양국 관계 개선의 기운이 고조됐다.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가. 

▲양국 정부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양국 관계가 험악하게 된 원인은 아베 정권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일본 정부가 아시아 침략,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회담에 임하지 않는 한 절대로 중국,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고 본다. 

--모임 회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회원 수는 약 600명이다. 회원은 회비를 내며 모임을 지탱해온 사람들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오사카와 히로시마, 나가사키 지부에 몇명씩 있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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