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전도사 무토 日대사

[Weekly BIZ] [interview] 'FTA전도사 무토 日대사

  • 선우정 Weekly BIZ 에디터 su@chosun.com      입력 : 2011.11.04 13:31

"韓·日 문화개방 때도 문화침략 걱정했죠? 지금 한류를 보세요"
"韓·日 FTA로 對日적자 확대? 함께 개척할 더 큰 시장 봐야"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할 때, 한국은 무역 관계의 이해득실을 지나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한·미, 한·EU, 한·중 FTA엔 적극적인 정부가 한·일 FTA에 대해선 움직임이 느린 것도 무역의 득실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강한 제품력 때문에 한·일 무역 적자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다.

▲ 무토 주한 일본대사는“자주 가는 서울의 한식당은 무궁화, 석파랑, 필경재 등”이라고 했다. 주로 초대를 받아 간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식의 B급 메뉴를 즐긴다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하지만 훗날 떠올렸을 때, 얼굴이 달아오르는 우리의 피해 의식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전(空前)의 한류 붐으로 결판이 난 한·일 문화 개방이었다.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선 일본 문화가 들어오면 한국 문화가 오염된다고, 침략당한다고 했어요. 개방을 한 뒤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일본보다 뛰어난 문화를 만들었지요. 저는 한국이 (개방으로) 일본 문화를 왕성하게 흡수해 더 뛰어난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아무리 독창적인 문화라도 80%는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우려와 정반대로 한류가 승리한 것처럼, 더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공부하는 쪽이 결국 이기는 것이다.

무토 대사는 1975년 한국 대사관에 부임한 이후 5차례에 걸쳐 11년 동안 한국에서 근무했다. 한국을 가장 많이 경험하고 가장 잘 이해하는 일본 외교관으로 꼽힌다. 작년 8월 대사로 부임한 뒤, 그는 한국 각지를 돌면서 한·일 FTA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부로 움츠러드는 일본의 현실을 한·일 FTA를 통해 돌파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일지 모른다. 물론 그는 국익(國益)을 위한 행동임을 감추지 않는다.

"오직 일·한 관계를 위해서 FTA를 주장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선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Weekly BIZ는 서울 일본대사관 집무실에서 무토 대사를 만났다. 외교관인 그는 정중하고 신중한 언어로 말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이런 뜻으로 들렸다.

"한국은 이제 약한 나라가 아니야, 제발 자신감 좀 가져!"

반찬 하나 더 얻어먹자고 이웃과 담장을 허무는 바보는 없다. 모든 개방과 교류에는 이해득실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미 FTA가 정국을 흔들기 시작한 지난달 31일,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는 "옆으로 다가오라"고 했다. "한·일 FTA로 관세가 사라지면 대일 무역적자가 더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한국에 있다"고 질문한 뒤였다. 그는 한 뼘 크기의 수첩에 숫자를 적으면서 설명했다.

"작년 일본의 한국 수출은 643억달러였어요. 한국의 일본 수출은 282억달러였지요. 한국이 360억달러 정도의 적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한국 수출은 이렇게 구성돼요. 45%가 재(再)수출용, 즉 수출한 일본 부품이나 소재를 수입한 한국이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의 관세는 환급(還給)되니까 지금도 관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관세 면에서 이 부분은 FTA와 관계없지요. 한국이 한·미 FTA와 한·중 FTA를 통해 수출이 늘어나면, 자연히 재수출용 수입은 늘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무역적자가 한국의 손실일까요?"

―나머지 55%는?

"한국 국내에서 소비되는 부분이지요. 금액으로 357억달러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282억달러는 대부분 일본 국내에서 소비됩니다. 이 부분(국내 소비용 수출입)만 생각하면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70억달러 수준이지요. 엔화 강세와 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올해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17% 줄어들 전망이에요. 재수출용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무역적자는 사실상 해소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줄어든 적자가 FTA로 인해 다시 늘어날 것을 염려합니다.

"FTA로 한국의 일본 수출이 늘어나는 것처럼, 물론 일본의 한국 수출도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일본의 한국 수출품 중 자본재가 45%, 원자재는 50%입니다. (엔화 강세로) 이미 일본 제품은 상당히 비싸졌어요. 지금 한국은 일본에서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만 사고 있지요. 관세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동안 사지 않던 비싼 일본 제품을 한국이 사기 시작할까요? (빠르게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5%에 불과한 소비재 정도이겠죠. 그리고 지금 일본도 부품과 소재를 한국에서 수입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어요. 일본의 어떤 일류 기업도 '올재팬(All Japan·소재와 부품, 완제품까지 모든 것을 일본에서 만드는 것)'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무토 대사는 "확실한 분석에 기초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일이 함께 따먹을 과일들

―한국이 볼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죠.

"일·한 FTA는 한·중 FTA와 성격이 다르다고 봅니다. 한·중 FTA에서 한국이 추구하는 것은 (성장시장인) 중국시장에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한국도 일본도 자신의 완제품을 가지고 서로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요타자동차도 한국 시장에 그렇게 많이 팔지 못해요. 1년에 1만대 정도이지요. 한국 삼성이나 LG도 그렇게 빨리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같은 입장이지요. 완제품의 경우 자국 제품이 자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라이니까."

도요타의 경우, 작년 일본 공장에서 생산한 372만대 중 1만486대를 한국에 판매했다. 도요타는 작년 일본을 포함해 세계 공장에서 716만대를 생산했다. 도요타에 한국 시장은 북미 시장의 200분의 1이다.

―양국 간 무역에서 이익이 그렇게 적다면, 왜 FTA를 하나요?

"일·한 FTA는 차원이 다릅니다. 서로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지요. 일본과 한국이 손을 잡고 하나의 시장으로 세계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세계의 인프라스트럭쳐(사회기반시설) 수요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아세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추계를 보면 71조달러입니다. 작년 한국의 일본 수출이 282억달러였지요. 2500배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함께 이 시장을 개척하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가 자원이에요. 자원을 생산하는 국가는 독과점 상태이지요. 자원을 사용하는 국가는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사용하는 나라이지요. 혼자 접근하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일본과 한국은 하나의 시장이다. 그러니 함께 협상한다'고 하면 협상력도 커지고, (각자의 외교력이 있으니) 자원 국가의 정치적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집니다. 일본과 한국 기업이 제품을 공동 생산하면 제품의 기준을 국제화하는 것도 쉽지요. (FTA를 말하면서) 한국 시장, 일본 시장에서 득실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크지 않아요. (시장을 통합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함께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연구해야 합니다."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실제로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삼성엔지니어링과 미쓰이 화학의 인도 고밀도 폴리에틸렌 제조 공장 수주(2억3000만달러), 한국전력과 스미토모상사의 아부다비 발전사업 참가(총사업비 15억달러) 등이 있다.

일류기업이 한국에 오는 이유

―한국이 일본의 파트너로서 아직 모자란 점은 없나요?

"비즈니스의 세계는 상당히 달라졌어요. 유일한 문제는 한국의 일반 국민이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긴밀해 졌다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본도 똑같아요."

―옳은 말씀이지만, '한국이 요구하는 일본의 농수산물 개방과 비관세장벽 완화를 하기 싫어서 저러는구나' 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

"아닙니다. 그 문제를 들어줄 수 없다고 차단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가능한 문제를 테이블 위에 놓고 검토해야지요. 지금 도쿄(일본 정부)는 한국 요구에 대해서 가급적 일·한 FTA 교섭 이전에 답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일본의 산업 지형에서 한국의 위치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요즘에 한국에 들어오는 일본 기업을 보세요. 각 분야에서 세계 일류기업들입니다. 원래 이런 기업들은 도요타, 도시바,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이 세계에 진출하면 함께 나갔지요. 그런데 한국은 달라요. 지금 스스로 (단독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왜 이런 기업이 들어가겠습니까? 삼성, LG, 현대자동차와 같은 좋은 거래처가 한국에 있고, (선진기업 간의) 신뢰 관계가 구축됐기 때문이지요."〈그래픽

―관세 장벽이 사라지면 한국에 들어오려던 일본 기업도 그냥 일본에 머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 관세가 무거워서 한국에 가는 것이겠습니까? (삼성, LG, 현대 등)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수한 인재가 있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얼마 전 한국 투자를 결정한 미쓰비시상사와 닛폰소다는 중국,베트남 등 다른 지역의 투자 환경을 다 조사하고도 결국 한국을 택했습니다."

―FTA로 인해 일본의 한국 투자가 늘어난다고 보십니까?

"일본이 필리핀과 FTA를 맺고 투자가 5배 늘었어요. 경제적인 메리트도 분명히 있어요. 관세가 낮아지면 진출한 기업이 일본에 있는 1차 하도급, 2차 하도급 업체로부터 원료나 부품을 조달받기 쉽거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FTA로 구축되는 신뢰 관계입니다. FTA는 투자와 경쟁정책, 지적재산권, 정부 조달, 기준 인증과 같은 선진적 시스템을 망라하는 약속이니까요. 일본에서 말하는 EPA도 같은 개념입니다."

―이달 초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방한 때 양국 통화 스와프 규모를 700억달러로 늘렸습니다. 리먼 쇼크가 있던 3년 전 자세와 달라진 듯합니다.

"양국의 경제 관계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같은 팀으로 공수(攻守)를 함께 하는 것.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때도 함께 나아가고, 세계 시장으로부터 도전을 받을 때도 함께 방어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리먼 쇼크 당시 한국의 도움 요청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가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결국 일본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도 약화됐지요.

"3년 전엔 (100엔당 원화 환율이) 800원대에서 1600원대로 급락했지요. 이번엔 (원화가치 하락이)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했어요. 실제로 총리가 방한했을 때 그렇게 크게 하락하지도 않았어요. '일본과 한국이 함께 가자'는 진실성을 토대로 (통화스와프) 결정을 한 것이지요."

좋은 제품과 팔리는 제품

―한국에선 일식(日食)이 붐입니다. 일본 레스토랑 체인도 많이 들어와 있고요. 그런데 일본인 셰프가 만들어도 일본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나요.

"일본 야키니쿠(고깃집) 체인이 한국 셰프를 고용하면 반드시 일본 주인과 싸움이 납니다. 한국 셰프는 한국 맛은 이것이라고 하고, 일본 주인은 일본 맛은 이것이라고 하고. 그런데 일본에선 일본 맛에 맞춰야 제대로 영업할 수 있어요. 현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요즘 서울 일식당들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그냥 '일본식 한국요리'였는데."

―한국이 흉내 내기 어려운 무언가가 일본에 있는 듯합니다.

"도쿄는 엑센트릭(eccentric·유별난)한 곳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 요릿집에선 요리를 내놓는 시간에 매우 집착합니다. '나카이(仲居)'라고 불리는 여성은 요리를 언제 내놓을 것인지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음식의 맛만이 아니라, 담는 방식, 내는 타이밍, 연출하는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극상(極上)까지 밀어붙이는 것이지요. 그렇게 신경을 쓰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 특유의 것이지요."

―한국은 일본의 그런 면까지 캐치업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요.

"그렇게 극상까지 노력하는 대신 너무 비싸서 영업이 잘 안 돼요. 회삿돈으로 먹는 시대가 가고,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먹는 시대이니까.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일본은 좋은 것을 만들고, 한국은 팔리는 것을 만드는 거예요. 일본은 세계 어디를 가도 무조건 좋은 물건, 최고의 물건을 내놓으려고 해요. 한국은 좋은 물건이라 해도 그 나라의 수준과 수요에 맞는 물건을 내놓으려고 해요. 한국이 똘똘하지요. 장사의 세계에선."

―존경하는 일본 외교관은?

"스노베 료조 전 대사입니다. 1970년대 말 주한 일본대사를 지냈지요. 그때 일본은 한국에서 존재감이 컸을 때였어요. 그가 한국의 지방을 돌아보고 와서 한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한국의 지방에 가면 중앙정부의 차관을 해도 충분한 지식인과 교양인이 군청에 있다. 한국은 결국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실제로 그렇게 됐지요. 상대국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그래서 선견(先見)의 눈을 가진 분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