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민단 "윤봉길 의사 순국 골짜기 확인"

 

(가나자와=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순국한 지 78년 만에 고인이 최후를 맞은 일본 땅을 확인했다.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민단 본부는 구 일본군 내부 보고자료와 그 후 토지개량 관련 지도 등을 근거로 확인작업을 벌인 끝에 윤 의사가 처형된 '미쓰코지야마(三小牛山) 서북골짜기(西北谷間)'를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이곳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金澤)시 교외에 있는 육상자위대 미쓰코지야마 훈련장 내부다. 

일본군은 1932년 12월19일 윤 의사를 총살한 뒤 당시 육군 9사단 주둔지였던 이 산의 다른 장소(동남쪽 평지 < 東南高臺 > )에서 총살했다고 발표했지만 패전 후 공개된 일본군 내부 문서에는 '미쓰코지야마 서북골짜기의 가나자와-오하라(小原) 사이 산중 도로의 동쪽, 교통이 뜸하고 공개될 위험이 없고, 동쪽 절벽은 높이 약 7m여서 총탄 차단에 적절한 장소'에서 총살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민단 지역 본부는 이를 근거로 지난 4월부터 부근에 사는 재일동포 2세와 일본인 시민운동가 등 3명으로 팀을 꾸려 1956년 지도와 1962년 항공사진, 2002년 지도 등을 찾아내 대조작업을 벌여왔다. 

2008년에도 국내의 한 방송국이 일본군 내부 문서에 첨부된 간단한 약도를 근거로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처형 지점을 추정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처형 이후 지형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번 작업으로 윤 의사가 처형된 골짜기를 재차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시카와현 민단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조만간 민단 중앙본부와 윤봉길 기념사업회 등에 보낼 예정이다. 

변종식 이시카와현 민단 단장은 "고국에 있는 분들이 윤 의사가 중국 상하이에서 의거를 벌인 사실은 알아도 일본에 끌려와 산골짜기에서 처형당한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윤 의사가 최후를 맞은 골짜기를 찾아낸 것을 계기로 다양한 기념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일본군이 도열한 기념식장에 물통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 군간부를 즉사시켰다. 일제는 같은 해 5월25일 윤 의사를 군법회의에 넘겨 사형 선고를 한 뒤 12월19일 가나자와에서 총살해 부근 노다야마(野田山) 공동묘지로 가는 길 밑에 암장했다. 윤 의사의 유골은 1946년에 발굴돼 용산 효창공원으로 옮겨졌고, 암장지 부근에는 1992년 기념비가 세워졌다. 

 

2010년 12월 19일 (일) 05:32  연합뉴스

 

 

 

 

금메달 아키모토 왕기춘 페어플레이에 “존경과 경의”

 

[한겨레] 왕기춘은 너무나 아쉬웠다. 연장 종료 23초를 남기고 다리잡아매치기로 유효를 내준 뒤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승자와 심판진이 모두 떠난 뒤에도 한동안 매트 위에 머물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 갈비뼈 부상으로 금을 놓친 불운과 지난해 용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의 20대 여성에 대한 손찌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속죄까지 이번 아시안게임의 금메달로 모두 씻어내고 싶었는데. 

 결승전까지 왕기춘은 승승장구했다. 8강에서는 인도의 라마쉬레이 야다브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간단히 이겼고, 4강 전에서는 다크호스 북한의 김철수를 누르기 한판으로 제압했다. 드디어 결승. 상대는 숙적 아키모토 히로유키. 올해 세계선수권 4강전에서 판정패로 자신을 꺾어 대회 3연패를 좌절시킨 선수다. 더구나 상대는 정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4강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아키모토는 왕기춘에게 적수가 될 수 없었다. 

 

2010년 11월 16일 (화) 08:20  한겨레

 

 

 

 

한일정부, 日수탈 도서 1천205권 반환 합의(종합)

 


日수탈 도서 반환협정식 (요코하마=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김성환(왼쪽) 외교통상부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이 14일 요코하마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 약탈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도서 1천205책의 한국 반환 협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2010.11.14 swimer@yna.co.kr

정상회담서 도서 반환협정..日총리 "가까운 시일내 반환"

양국 '셔틀외교' 재개 합의..李대통령 "다음 방일때 FTA 논의"

(요코하마=연합뉴스) 추승호 이승우 기자 = 일제 강점기 일본이 수탈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문화재급 도서 1천205권이 우리나라로 돌아올 전망이다.

반환에 합의된 '왕세자 가례도감의궤' (요코하마=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일제 강점기 일본이 수탈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문화재급 도서 1천205권이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14일 요코하마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일제 강점기 약탈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도서 1천205책의 한국 반환 협정식장에 반환에 합의된 '왕세자가례도감의궤(王世子嘉禮都監儀軌)'가 전시돼 있다. 채색그림으로 순종이 왕세자 시절 순명왕후(純明王后) 민씨와 결혼한 일을 다루고 있다. 2010.11.14 swimer@yna.co.kr

김성환 외교통상 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은 14일 일본 요코하마(橫浜)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유래(수탈)한 도서 1천205권을 인도(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협정문에는 협정 발효 후 6개월 내에 도서를 인도하며 양국간 문화 교류를 발전시키고자 협력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날 협정식에는 한국 반환에 합의된 일부 도서가 전시됐다.

일본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협정문을 임시국회에 상정해 비준을 받는다는 방침이지만, 자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이 다소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점이 걸림돌이다.

중의원 외교위원회와 본회의는 큰 문제없이 협정문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대야소'인 참의원 외교국방위원회와 본회의에서는 비준에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한.일 정상회담 (요코하마=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14일 요코하마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회담을 마친뒤 일제 강점기 약탈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도서 1천205책의 한국 반환 협정식에 참석했다. 2010.11.14 swimer@yna.co.kr

이 대통령은 이날 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번 도서 반환이 한일관계에 획기적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간 총리와 일본 내각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간 총리는 "일한 도서협정 서명식을 통해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 동의를 얻어 가까운 시일내 도서가 전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또 사실상 중단됐던 한일 '셔틀외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간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가급적 연내 한번 더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인사 나누는 한.일 정상 (요코하마=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14일 요코하마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회담을 마친뒤 일제 강점기 약탈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도서 1천205책의 한국 반환 협정식에 참석했다. 2010.11.14 swimer@yna.co.kr

간 총리는 아울러 한일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재개를 희망했고 이 대통령은 다음 일본 방문때 FTA 협상 재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간 총리의 8.10 담화 후속 조치로 사할린 한인과 유골 봉환 문제 등이 착실히 진전되도록 노력키로 했다.

이와 함께 6자 회담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장이 돼야 하고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향후 대북 문제에 긴밀히 공조키로 했다.

이밖에 간 총리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했고, 이 대통령은 부품 소재 분야에서 양국간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그래픽> 일본내 주요 한국문화재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성환 외교통상 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은 14일 일본 요코하마(橫浜)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유래(수탈)한 도서 1천205권을 인도(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bjbin@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예상대로 경기는 왕기춘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왕기춘의 공격은 단조로웠다. 유도 선수들이 흔히들 잡기 과정에서 보여주는 발목 공격을 하지 않았다. 주특기인 업어치기 공격에만 주력했다. 아키모토는 수비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심판은 지도를 주지 않았다. 종료 23초전 왕기춘은 공격을 벌이다 아키모토로부터 역습을 당했다. 몸을 돌려 떨어졌지만 심판들은 유효를 선언했다. 골든스코어제로 치러지는 연장전. 패배였다. 

 그러나 왕기춘은 비운의 은메달리스트만은 아니었다. 경기를 마친 뒤 상대방의 부상 부위에 대한 공격을 피한 그의 페어플레이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금메달리스트 아키모토는 "나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키모토는 준결승을 치르다 왼쪽 발목을 다쳐 결승에서 내내 절룩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왕기춘은 주로 업어치기 공격을 폈다. 경기를 압도했지만 기술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아키모토는 "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자신의 말처럼 수비에만 치중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일본 언론은 왕기춘에게 왜 다친 발목을 공략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왕기춘은 "아키모토가 발목을 다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상 부위를 노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왕기춘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며 "내가 넘기지 못해 졌으니 다음번에는 넘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의 불운에 속울음을 삼켜야했지만 왕기춘은 페어플레이를 통해 45억 아시아인들에게 금메달리스트 못지 않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e뉴스팀 

 

2010-11-14

 

 

 

 

[G20 서울선언] 빈손으로 떠난 美… 발걸음 가벼운 中·獨… 구경꾼 된 日

 

美 한미FTA·中 압박 모두 실패… 양적완화 조치로 비난 화살만
中 위안화 방어에 사실상 성공… 신흥국 지지로 입지 재확인
獨 미국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 서울선언에 자국입장 담아내
日 외환시장 개입으로 명분 상실… G2대립에 치여 목소리 못내

김현수기자 h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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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는 역대 어느 다자 간 회의에서 찾을 수 없는 첨예한 국가 간의 이해득실이 걸려 있었다. 당장의 경기회복은 물론 미래 경제 질서까지 좌우할 수 있는 매머드 의제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국가별로 충돌했다. 

그렇다면 이번 회의는 어느 국가에 득(得)을 줬고 어느 국가에 실(失)을 주었을까. 

결과적으로 볼 때 G20 정상회의를 상대적으로 성공리에 마친 곳은 중국과 독일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은 사실상 그들이 원했던 해답을 거의 얻지 못했고 일본 역시 중국에 G2의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거대한 경제질서의 흐름을 이번 회의를 통해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사실상 빈손으로 떠난 오바마=11월 중간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공항에 들어오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도착 직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결실을 그의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미국의 무역 역조를 개선하고 중국에 대한 확실한 통화 절상의 도장을 이번 기회에 찍을 것으로 믿었다. 지난달 경주 재무장관회의 당시의 분위기로만 놓고 보면 오바마의 이런 기대가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G20 회의를 마친 뒤 12일 서울을 떠나는 그는 사실상 ‘빈손’이었다. 

선거 패배 이후 처음으로 해외 정상들과의 접전을 펼쳤지만 FTA도, 위안화 절상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도 모두 얻지 못했다. FTA는 그나마 조기 합의라는 상징적 단어라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주 회의때 제시했던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은 중국과 독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고 초안에 있던 중국의 통화정책을 가리키는 ‘경쟁적 저평가(competitive undervaluation)’라는 표현도 채택되지 못했다. ‘경쟁적 평가 절하 자제’를 ‘저평가 자제’로 바꿔 조금이라도 중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얻으려 했지만 도리어 중국과 신흥국들로부터 양적완화 조치에 대한 비난의 화살만 받았다.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 자리에 선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는 거의 찾을 수 없었고 오바마 특유의 역동적인 모습 역시 정상회의 내내 자취를 감추었다.

◇발걸음 가벼워진 후진타오, 위안화 사실상 방어 성공=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요코하마로 떠났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문제를 제기,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에 물러서지 않으며 미국에 대립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임을 과시했다. 

경주 재무장관회의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날 것처럼 보였던 G20은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국들이 똘똘 뭉치며 미국에 쓴맛을 안겨줬다. 

후 주석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미국과의 환율담판은 물론 신흥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위안화 절상을 압박해오는 미국에 맞서 신흥국의 자본 규제를 골자로 한 거시건전성 강화 등에 대한 인정을 얻어냈다. 여기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반발하며 독일 등 유럽 선진국, 브라질 등 신흥국과 각각 전략적 동반관계를 보이며 국제 외교무대 중국의 위치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 주석은 특히 지난 11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집중적인 위안화 절상 압박을 한 데 대해 절상 프로세스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예봉을 꺾었다.

◇메르켈 총리, “성공적 회담” 희색=독일은 이번 회의 내내 중국 이상으로 미국의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끝내 서울선언에 그들의 입장을 담아내면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특히 미국의 경상수지 목표제에 반대를 하는 동시에 중국에는 경쟁적 환율저평가로 공격하며 독일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인식시켰다.

차기 G20 의장국인 프랑스는 이번 회의 결과에 속으로는 불만이지만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는 상황이다.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불균형을 개선하자는 미국 주장에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독일과 중국을 비난하며 적으로 돌릴 경우 차기 의장국으로서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오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경우 G20은 정치적인 변수이기도 하다. 

◇중국의 ‘빅2’ 부상을 보며 쓴웃음 지은 간 총리=일본은 이번 회의에서 별로 얻은 게 없다. 게다가 중국ㆍ러시아와는 영토분쟁으로 양자회담 한번 갖지 못하고 끝을 냈다. 물론 13~14일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글로벌 무대에서 이렇게 주목 받지 못한 것도 이례적이다. 

오히려 통화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치여 제대로 된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했다. 일본은 당초 미국ㆍ유럽 등과 힘을 합쳐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할 방침이었지만 9월15일 엔고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2조1,000억엔의 대규모 개입(달러 매수)을 한 뒤 국제사회의 비판의 표적이 되면서 명분을 잃고 끌려가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G20의 실력자로 부상한 중국ㆍ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빚으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발언력을 상실했고 센카쿠 갈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간 나오토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국정 장악력이 약화돼 G20에 전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율전쟁의 시발점이었지만 정작 환율전쟁의 해법을 찾는 자리에서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10-11-03
 
 
 
 

[주말화제] 열도는 왜 ‘소녀시대’에게 열광하는가

 

[서울신문] "가와이!"(귀여워)에서 "갓코이!"(멋있어)로. 29일 저녁 일본 도쿄 국제포럼홀. 한국 대중음악 쇼케이스 'K-팝 나이트 인 재팬'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걸 그룹 포미닛을 비롯해 제국의아이들, 씨스타 등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은 떠나갈 듯 환호했다. 5000여개 좌석은 예약 개시 30분 만에 동났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K-팝 열풍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그 한복판에 소녀시대(소시)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순위인 오리콘 차트는 지난 26일 새벽 4시에 긴급뉴스를 내보냈다. 한국 걸 그룹 소시가 해외 여성 그룹으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주간 싱글 '톱3'(2위)에 진입했다는 속보였다. 그날 저녁 소시의 대표곡 '지'(Gee)는 오리콘 일일 싱글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소시는 일본 연예 전문 월간지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10월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일본의 연말 최고 이벤트인 NHK 홍백가합전 출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또 다른 걸 그룹 카라의 일본 내 인기도 폭발적이다. 

걸 그룹 원조인 일본이 왜 소시로 대표되는 한국 걸 그룹, 즉 '역수출 상품'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일본 최고 인기 걸 그룹 AKB48과의 비교에서 찾는다. 

2006년 데뷔한 AKB48은 멤버가 무려 48명이다. '고등학교 한반 급우' 컨셉트다. 일본 걸 그룹이 깜찍함과 친근함을 앞세운 친구 같은 존재로 팬들에게 다가섰다면, 한국 걸 그룹은 폭발적인 가창력, 체계적이고 오랜 훈련을 거쳐 완성된 화려하고 전문적인 댄스 퍼포먼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여성들이 선망하는 늘씬한 몸매를 뽐낸다. 

시나다 히데오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편집인은 "일본 여성들은 점점 친구 같은 스타보다 동경의 대상을 원하는 추세"라고 풀이했다. 소시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김영민 대표는 "유난히 일본의 10~30대 여성 팬이 많은 까닭은 이들이 따라하고 싶은 워너비(wannabe) 스타일이 바로 소시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AKB48 총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도 "노래와 춤이 되면서 늘씬하기까지 한 한국 걸 그룹은 확실히 일본 걸 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아이돌 그룹의 세계 시장 공략이 늘어나면서 한 단계 발전된 마케팅 기법이 한몫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표는 "비틀스 프로젝트가 주효했다."고 전했다. 영국 비틀스가 음악을 먼저 히트시킨 뒤 일본을 방문한 것처럼, 소시도 히트곡 주인공을 보고 싶어하는 일본 팬들의 열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현지 콘서트를 열어 열기를 극대화시켰다는 얘기다. '무국적' 솔로 스타로 진출한 보아와 '한국 국적'으로 신인처럼 단계를 밟은 동방신기에 이어 제3의 일본 공략 유형을 제시했다는 자부심도 컸다. 

 

2010년 10월 30일 (토) 03:36  서울신문

 

 

 

 

"한일해저터널 천문학적인 경제효과 유발"<부발연>

 

생산유발효과만 54조5천억원..고용효과 45만명 

최적노선으로 '부산~가덕도~대마도~후쿠오카' 제안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 거가대교 해저침매터널 개통 이후 초대형 토목공사인 한일해저터널 건설 사업을 둘러싼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한일해저터널이 천문학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 제시돼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광역기반연구실장인 최치국 박사는 '한일터널 기본구상 및 향후 과제'란 자료를 통해 한일해저터널의 파급 효과와 관련 "동북아 교역 활성화는 물론 동북아를 1일 생활권으로 묶을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또 한일해저터널 사업의 투자액이 19조8천억원(한국 부담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54조5천287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9조8천33억원에 달하며, 고용유발효과는 44만9천9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한일해저터널 수요와 관련, 여객은 417만6천명(2030년 기준)이 이용할 것으로 추정했으며, 화물은 9만3천TEU(2030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최적 노선으로 부산 강서구 국제물류산업도시~가덕도~남형제도~대마도~이키섬~후쿠오카를 잇는 222.6㎞(해저 146.8㎞+육상부 75.8㎞, 최대수심 190m, 교통수단 고속철도+카 트레인)를 제안했다. 

이 구간 해저터널을 짓는데 약 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으며, 건설비는 1㎞당 4천130억원, 총 92조원가량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구간은 일본 측 일한터널연구회 측이 제안했던 부산~가덕도~거제도~대마도~이키섬~카라츠간 220㎞(해저 128㎞+육상부 92㎞, 최대수심 160m, 교통수단 신칸센+카 트레인)구간보다 건설기간은 5~10년 앞당기고, 건설비는 최대 40조원 가량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최 박사는 분석했다. 

그는 양국 정부 차원에서 한일해저터널 프로젝트를 새로운 100년의 한일 협력프로젝트로 선정하는 한편 한일해저터널 건설의 가시화를 위해 한일 양국의 부담으로 한일해협구간 지형.지질조사, 노선대 선정 및 공법연구 등을 담당할 한일터널연구원 또는 대학원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최 박사는 이 자료를 15일 오후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열릴 '한일해저터널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세미나는 부산발전연구원, 한국의 한일터널연구회, 일본의 일한터널연구회가 공동 주최하는 것으로, 한일해저터널 추진기구, 재정확보, 단계별 건설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소시는 일본 여성, 카라는 남성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5년째 직장생활 중인 김혜경(29)씨는 "일본 남자들은 키 큰 여자를 멀리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소시보다 평균 신장이 작은 카라나 AKB48이 일본 남자들 사이에서 더 인기인 것은 그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드라마로 대표되는 구(舊) 한류에 이어 노래, 패션, 화장법까지 전방위 소비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 한류 열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본 내 한국음악 전문 채널 '엠넷 재팬'을 총괄하는 민병호 CJ미디어 재팬 본부장은 "내년에는 한국의 보이 그룹들도 본격 진출할 움직임"이라며 "양질의 아티스트를 꾸준히 배출한다면 한류 붐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2010년 10월 13일 (수) 16:26  연합뉴스

 

 

 

 

 

 

日 상식밖 환율발언에 정부 '강력 항의'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김준억 기자 = 일본 정부가 중국은 물론 한국의 외환시장까지 싸잡아 비판한 것은 수세에 몰린 자국 상황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강력 항의에 대해 일본 측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일단 봉합되는 분위기지만 글로벌 '환율 전쟁'이 확산 추세에 있는 만큼 논란의 불씨가 쉽게 꺼지지는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식밖 日 환율발언..정치적 포석인듯 

일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은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간 총리는 글로벌 통화 절하 경쟁과 관련 "특정국이 자기 나라의 통화가치만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도하는 것은 주요 20개국(G20)의 협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도 공통의 룰 속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다 재무상도 "한국은 원화 환율에 수시로 개입하고 있고, 중국도 지난 6월 외환제도 개선을 통해 위안화의 유연화 노선을 택했으나 걸음이 지체되고 있다"고 비판한데 그치지 않고 이달말 경주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회의에서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그 역할을 엄하게 추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사람을 잡는'듯한 이런 발언에 우리 측은 발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식석상에서 특정국을 거명해 환율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인데다 자국 외환시장에는 대규모 개입을 하면서도 수출 경쟁국인 한국을 문제 삼는 `이중적 행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총리와 장관이 의회에서 예상치 못한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나왔다는 일본측의 해명도 전해졌지만, 일단 외환정책을 놓고 수세에 몰린 일본의 상황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밖으로는 이달 초 공개적인 시장개입에 따른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해 한국까지 끌어들여 '물 타기'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관측이다. 또 안으로는 엔고로 수출시장에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자국 기업들의 목소리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 성격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 시장 참가자는 "일본 정부가 대규모 개입에도 엔화 강세가 지속돼 정부 정책이 실패하자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국내 `정치용'인 것 같다"며 "일본 기업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괜히 한국과 일본을 걸고넘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G20 의장국을 맡아 '잘 나가는'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더욱이 일본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시기적으로 G20 서울회의에 이어 열리면서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도 일본 정부의 '한국 흠집내기' 정서의 배경일 수 있다는 얘기다. 

◇日정부 재발방지 약속..갈등 불씨는 안꺼져 

정부는 당초 일본 총리와 재무상의 발언에 대해 "다른 국가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노코멘트"라고 공식 입장을 정리했으나 파문이 커지자 일본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해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낸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선회한 것은 일본 정부가 단순히 외환시장 개입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G20 정상회의 의장국 지위를 걸고 넘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글로벌 환율전쟁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중재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일본 측의 발언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항의는 기획재정부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이 카운터파트인 일본 재무성 국제국장에게 전화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총리와 재무상의 의회 발언에 대해 일본 재무성 측에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며 "일본 측은 '다른 나라 외환 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임을 안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해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환율갈등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리의 발언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엔화강세를 막지 못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돌릴 곳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외환시장 개입에 실패한 일본 정부를 중국과 한국 정부와 비교하면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환율 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오는 22~23일 G20장관회의에 이어 다음달 정상회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신중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환율이 급변동하는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미세조정에 나선다는 원칙적인 방침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역외투자자들의 투기거래에 대한 공동검사 등을 통해 우회 전술도 펴고 있다. 

아울러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힌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원천징수 재개와 관련해서도 기획재정부는 "국제적 정합성 차원에서 1년 반 전에 폐지한 것을 부활할 수 있겠냐"며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는 입장이다.

 

2010년 10월 13일 (수) 21:55  연합뉴스

 

 

 

 

 

 

 

 

 

막걸리 세계인의 술로- 일본서도 열풍(동아일보)

 



저녁식사 자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일본인의 모습은 이제 낯선 광경이 아니다. 16일 저녁 일본 오사카의 한식당 ‘한일관’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일본인들(왼쪽 사진)과 도쿄의 한 한식당 앞에 마련된 막걸리 광고판. 도쿄=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사진 제공 aT 오사카지사
 

9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우에노(上野) 거리에 위치한 한 한국식당. 

나카야마 다카테루(中山준彰·25) 씨가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한쪽에서는 삼겹살이 익고 있었고, 4명의 일행은 도토리묵과 모둠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한국의 저녁 회식 자리처럼 보였다. 나카야마 씨는 “한 달에 한두 차례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신다”며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친구의 권유로 처음 마셔본 뒤 자주 마신다”고 했다. 한국에서 불고 있는 막걸리 바람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20, 30대 여성에서 전 계층으로

나카야마 씨의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여성은 생맥주 한 잔씩을 비운 뒤 곧바로 식사와 함께 막걸리를 주문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막걸리 잔을 채우던 후지와라 아야노(藤原o及·31) 씨는 “막걸리칵테일 등 다양한 막걸리가 있어 처음 마실 때도 거부감이 적다”며 “한국 음식과 함께 마시기에는 맥주보다 막걸리가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식당은 ‘거봉막걸리’ ‘매실막걸리’ 등 다양한 막걸리칵테일을 판매하고 있었다.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 손님이 늘면서 이 식당은 아예 ‘막걸리+모둠전’(3500엔·약 5만 원)과 같은 세트 메뉴도 내놓았다.

일본에서 막걸리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3년여 전부터다. 이종견 aT(농수산물유통공사) 도쿄지사장은 “한국과 일본의 막걸리 붐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금처럼 양국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끄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배용준과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한류 바람은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다녀온 일본인들이 막걸리를 찾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막걸리가 인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한국에서도 막걸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 이 지사장은 “소비층도 초기에는 20, 30대 여성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더 넓고 두꺼워졌다”고 분석했다. 

○ 과당 경쟁 우려도

오사카(大阪)에서 15년째 한국 식당 ‘한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명희 사장은 최근에 생막걸리 전용 보관 용기를 들여놨다. 10L들이 통 2개가 달린 이 용기는 차가운 상태를 유지해주고, 막걸리 특유의 침전물이 가라앉지 않도록 해준다. 이 사장은 “막걸리를 찾는 손님이 많아 용기 가득 막걸리를 채우면 딱 하루 판매량이 된다”며 “일본인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고 귀띔했다. 이 식당의 손님 중 95%는 일본인이다. 이곳에서 만난 후지와라 쇼이치(藤原昌一·44) 씨는 “막걸리 자체가 좋아서 마신다”며 “독주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에도 맞고, 목 넘김도 부드러우며,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본 내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진출업체도 크게 늘었다. 그동안 포천 이동막걸리를 일본에 수출해온 이동저팬이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업체였지만, 지난해 말부터 진로저팬이 뛰어들면서 ‘빅2’를 형성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40여 업체가 막걸리 시장에 뛰어든 탓에 벌써 과열 경쟁의 기미도 보이고 있다. 노태학 aT 오사카지사장은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일본 내 막걸리 시장이 국내 업체들의 출혈 경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며 “일단 현지 유통망을 확보한 뒤 진출해야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0-09-19

 

 

 

 

100m 줄서기는 기본…장사 너무 잘 돼서 '폐점'

 

< 8뉴스 > 

< 앵커 > 

일본 도쿄의 한 유명 라면집이 장사가 안 돼서가 아니라, '너무 잘 돼서' 문을 닫게 됐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유영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 기자 > 

도쿄 시나가와의 한 유명 라면집입니다. 

자리가 10여석 밖에 안 되지만, 점심시간이면 한꺼번에 2백 명 이상 몰려들어 대기하는 사람들이 100미터 가까이 늘어서 있습니다.

[손님 : 도쿄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니까요.] 

몇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습니다. 

[손님 : 6시간 기다렸어요.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맛있었어요.] 

그런데 이 가게가 최근 문을 닫았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기다리는 손님들의 긴 줄 때문입니다. 

줄 서기가 좁은 골목길 차 통행에 방해가 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는 이웃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웃주민 : 항상 차가 다니는 길인데, 줄이 방해가 됩니다.] 

가게 문 여는 시간을 앞당기고 배달도 하는 등 자구책을 내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찰 : 신고전화가 10분에 한번씩 와요. 주민들이 번갈아 전화해서 불평을 합니다.] 

결국, 장사를 접고 다른 곳을 물색하게 됐습니다. 

[라면집 종업원 : 좁은 곳에서 해서, 이웃에 폐를 끼치기만 해서요.] 

이 라면집의 폐점은 맛이 있으면 오래 기다려도 좋다는 일본의 독특한 줄 서기 문화와, 이웃에게 절대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인 특유의 사회적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0년 09월 18일 (토) 21:12  SBS

 

 

 

 

“독도는 일본땅”…일본 새 정권도 변함없어

 

2010년 방위백서 발표 

일본 방위성이 2010년판 방위백서에서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논평을 내어 항의의 뜻을 밝혔다. 

일본 방위성은 10일 내각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한 방위백서 제1부 '우리나라(일본)를 둘러싼 안전보장환경' 편에서 "일본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 및 다케시마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방위성은 자민당 집권기인 2005년 방위백서에서 처음으로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표현했으며, 6년째 큰 변화없이 같은 표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올해 방위백서에 이런 표현이 담긴 것은 정권이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어도,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12월 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담은) 중학교 학습에 입각한 교육'을 하라고 밝혀, 고교생들에게 독도 영유권 교육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 지난 3월엔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내놓으면서 5종의 사회 교과서에 표시된 지도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현하도록 했다. 

외교통상부는 이날 '당국자 논평'을 내어 "한·일 양국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어 "정부는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임을 재차 분명히 하며,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부당한 기도에도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외교부 일본과장이 주한일본대사관의 정무참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했고, 국방부도 주한일본대사관 무관을 초치해 항의했다. 정부의 이런 대응은 예년과 같은 수준이다. 

한편 일본 방위성은 이번 백서에 '한국 초계함(천안함) 침몰사건을 둘러싼 우리나라(일본)의 노력'이란 제목의 별도 해설을 실어 "한국 초계함에 대한 북한의 공격은 지역·국제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허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보고, 국제사회에 적극 호소했다"고 기술했다. 

방위성 관계자는 지난달 30일로 예정됐던 방위백서 발표를 늦춘 이유에 대해서도 "천안함 침몰사건을 둘러싼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을 담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09월 10일 (금) 21:40  한겨레

 

 

 

 

대만사람이 사실상 일본인보다 잘산다

 

가난한 일본인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에도 1인당 소득(구매력 기준 1인당 GDP 기준)이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나 삶의 질 측면에서는 더 이상 아시아 최고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 역시 일본과 소득 격차가 4127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바짝 근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말 일본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3478달러, 한국은 2만9351달러를 기록해 통계가 산출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이래 가장 근접한 수준까지 좁혀질 것으로 전망됐다. 

구매력평가(PPP) 기준 GDP란 국내총생산을 인구로 나눈 1인당 명목 GDP와는 달리 물가와 환율이 동등하다고 가정한 채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국민의 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통계지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 IMF의 이 같은 통계를 인용해 "한ㆍ일 양국의 성장률 추세로 볼 때 2018년 한국이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사상 처음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싱가포르에 1인당 GDP가 추월당한 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홍콩과 대만에도 잇달아 추월을 허용하며 아시아 국민의 생활 수준에도 지각변동이 초래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구매력평가 기준 GDP도 싱가포르(5만2840달러), 홍콩(4만4840달러), 대만(3만3831달러) 등이 모두 일본을 상회한 것으로 추산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IMF의 GDP 통계를 인용해 "최근 10년간 아시아 국가들이 약진하고 있는 데 비해 유독 일본만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한ㆍ일 양국도 2000년 초 구매력평가 기준 GDP 격차는 1만달러를 상회했지만 불과 10년 사이에 격차가 절반 이하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중국은 구매력평가 기준 GDP가 올해 현재 7240달러로 세계 96위, 명목 기준 1인당 GDP는 3999달러로 97위다. 중국은 전체 GDP에서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중국은 2000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2300달러에서 10년 만에 무려 3배 이상 늘어나며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국가로 확인됐다. GDP 통계는 명목가치와 구매력평가 기준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산출되는데 이 가운데 구매력평가 기준은 한 나라의 총생산을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치로 환산한 수치를 뜻한다. 

■ < 용어설명 > 

구매력평가(PPP) 기준 GDP = 각국의 물가상승률 차이, 환율 영향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구매력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을 산출한 통계. 명목 기준 GDP가 각국의 경제력 규모를 반영하는 데 비해 구매력평가 기준 GDP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로 자주 활용된다. 

 

2010년 09월 06일 (월) 17:05  매일경제

 

 

 

 

日 공립 초중학교 18% 고래고기 급식

 

일본 공립 초.중학교의 18%가 고래고기 요리를 급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전국 공립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18%인 5천355개 학교가 작년에 한 차례 이상 고래고기를 학생들에게 급식했다.

일본에서 학생들에 대한 고래고기 급식은 1987년 남극해에서의 상업 포경(고래잡이)이 금지된 이후 격감했으나 지난 2005년께부터 증가하고 있다.

학교에서 급식하는 고래고기는 일본 고래연구소가 조사포경 명목으로 남극해에서 잡은 밍크고래 등으로, 시중가격은 ㎏당 2천60엔이지만 학교에는 3분의 1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와카야마(和歌山)현과 나가사키(長崎)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일본의 고유 음식문화를 학생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고래고기를 급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조사포경으로 잡은 고래의 3∼4%인 연간 약 150t을 학교에 급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보호단체는 "조사포경으로 잡은 고래고기 재고가 1년분 정도 쌓여 있을 정도로 수요가 없는데도 고래잡이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일반 판매가 되지 않자 학교의 급식수요가 있는 것처럼 처리하고 있어 국제문제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kimjh@yna.co.kr 2010-09-05 14:43

 

 

 

 

"日 '독도영유권' 주장 방위백서 10일 발표"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이 10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2010년판 방위백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3일 보도했다. 

이 백서에는 '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라는 기술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포함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방위백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문장을 집어넣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앞서 7월30일 방위백서를 발표하려다 8월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한국강제병합 사죄 담화 발표와 강제병합 100년인 8월29일을 앞두고 한국과 외교 마찰을 우려해 발표를 미뤘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천안함 사건 등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한 최신 사안을 포함하기 위해 발간을 미뤘다고 설명했다.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7월 말 기자회견에서 독도영유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 국가의 입장은 일관돼 있다.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다"며 방위백서 발표를 미뤄도 표현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사실상 예고했다. 

일본은 1904년 2월에는 한일의정서, 같은 해 8월에는 한일협정서 체결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손발을 묶은 뒤 1905년 1월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시마네(島根)현 오키도 소관으로 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이를 근거로 독도영유권 주장을 해왔고, 2005년부터는 방위백서에 이 같은 주장을 포함했다. 

 

2010년 09월 03일 (금) 07:52  연합뉴스

 

 

 

 

[경술국치 100년] “15년전 순종황제 날인 날조확인 순간 日人들도 탄식”

 

[서울신문] 일이 벌어진 것은 1995년 어느 여름날. 일본 주오대(中央大) 강당에서 열린 을사늑약 90주년 학술대회장이었다. 연단에 자리한 수십명의 한·일 양국 학자들과 강당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일본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일본 통감부 직원 마에마 교사쿠가 남긴 글에서 따와 합자한 '척(坧)'자가 제시됐다. 조금 뒤 순종 황제가 일본과의 외교문서에 서명한 '척(坧)'자를 겹쳐 보였다. 딱 맞아떨어졌다. 


대한제국 문서에 있는 순종 황제의 날인 서명이 실은 일본인 통감부 직원의 날조였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강당은 '아~' 하는 낮고도 무거운 탄식으로 가득 찼다. 학술대회 뒷자리를 떠나는 학자와 청중은 물론 신문·방송 기자들까지 훌륭한 연구성과라며 악수를 청해 왔다. 건네받은 명함만 수백장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어느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 얘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경술국치 100년(29일)을 맞아 27일 서울 의주로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이때의 주장은 차츰차츰 불어나 15년 만인 2010년 한·일병합 조약은 원천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을 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마에마 교사쿠의 필체라고 확신했습니까. 

-말하자면 '표적 수사'였어요(웃음).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마에마가 쓰시마 출신으로 한국어에 능통했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그가 일본의 한국사 연구 1세대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학부 시절에 마에마가 남긴 서얼 제도나 훈민정음 연구논문을 많이 봤어요. 때문에 순종 황제의 위조된 친필 서명을 봤을 때 마에마 글씨 같다는 감이 확 오더라고요. 그래서 넌지시 마에마 유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일본인들에게 수소문해 보니 규슈대학에 있다는 거예요. 바로 날아가서 척(坧)자를 합자해 만들어본 뒤 비교했지요. 그 뒤 수사결과를 발표한 겁니다. 

→일본 반응에 변화가 있었나요. 

-주오대 때 반응이 워낙 열광적이었는데 다음날 언론보도가 하나도 없어서 이게 뭔가 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우익 테러 같은 걸 두려워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요즘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시민단체 초청으로 교토에 가서 설명했더니 모두들 "어떻게 이렇게 억지 조약을 맺을 수 있나. 부끄럽다."고 하더군요 

→그런 변화의 기미가 언제 감지됐나요. 

-2000년대 들어 8년 동안 을사늑약 원천무효 주장을 펼쳤습니다. 관련해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그 결과를 2008년 '한국병합과 현대'라는 책으로 일본에 내놨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나왔고요. 일본어판이 나오면서부터 일본 학자들 사이에 "이제 우리도 양심적으로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들이 나왔다고들 합니다. 학문적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본 학계의 높은 수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변화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탈아론(脫亞論)에 대한 반성이지요. 일본은 뭔가 특별한 존재니까 아시아를 벗어났고, 미개한 한국과 중국은 우리가 이끌어 줘야 한다는 게 탈아론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중국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일본만 특별히 우월하다는 얘기를 하기 어렵게 된 것이지요. 결국 예전 탈아론은 침략주의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반성이 나오게 된 겁니다. 이 같은 반성은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특히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얻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논쟁을 하다 보면 지식인들이 더 답답해서 뭔가 큰 정치적 계기가 없으면 일본의 변화가 힘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더 앞장서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가 고종 황제를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고종이 결국은 전제군주 아니었냐는 것이지요. 

-그건 지금이 민주주의 시대다 보니 군주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령 민중사학적 시각에서는 고종의 근대화 계획보다는 동학혁명이 더 중요합니다. 동학혁명이 있었는데 고종 황제가 탄압했다, 그러니 전제군주는 나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틀을 가지고 있을 뿐 구체적 사료를 세심히 보지 않았기에 나오는 겁니다. 당시 동학의 주장을 보면 고종을 비난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고종 역시 일본이 동학혁명을 핑계 삼아 개혁을 하라고 강요하자 농민군과 충분히 협상할 수 있으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반박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료를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도 한때 고종이 무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료를 보면서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일제가 자신의 강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채색했던 논리가 너무 상식처럼 퍼져 있다는 말이지요. 

→탈민족론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연구가 결국 '강도' 일본과 '피해자' 조선이라는 이분법을 더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요. 얼마 전 내놓은 선생님 논문도 일본 정한론(征韓論)의 기원을 조슈(長州) 지역 파벌, 그러니까 결국 임진왜란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내용인데요. 

-메이지유신을 추진한 조슈 세력은 한마디로 천황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천황에게 조공을 바치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조선이라는 논리입니다. 정한론이지요. 사실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들인 엄청난 노력과 어쨌든 그걸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정한론과 친근할 수밖에 없는 메이지유신의 근본적인 한계도 지적해 줘야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굳이 남들을 침략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소일본주의가 나옴에도 이걸 무시해 버립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피해자라서 더 정확하게 지적해 줄 수 있는 겁니다. 

→고종 시대사 연구가 얼마나 더 진행될 수 있을까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한국 강제병합에 관한) 사료 공개 작업을 추진 중인데 국립공문서보관소의 목록상태가 아주 나빠요. (일본에) 장기체류하면서 눌러앉아 뒤져보지 않으면 뭐가 들었는지 잘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더 정리가 되면 차근차근 둘러볼 여유가 더 많을 거예요. 요즘 들어 자료가 많이 올라오고 있으니 고종 시대사는 앞으로 분명 크게 바뀔 겁니다. 

→고종이 독살됐다고 보는 소신에도 변화가 없으신 거지요. 

-물론입니다. 얼마 전 (독살설 근거)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1905년의 을사늑약 유효성을 인정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고종이 거부하자 독살한 겁니다. 

간도 협약에 대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일본이 간도를 청나라에 넘긴 간도협약은 1909년 체결됐다. 이 협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제국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늑약 때문이다. 따라서 을사늑약이 원천무효라면 간도협약도 원천무효가 된다. 때문에 한쪽에서는 이번 기회에 간도까지 되찾자고 하는 반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논리적으로는 무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도 힘겨운 싸움인데 중국과 또 싸울 수 있을까요. 힘을 분산하지 않았으면 해요. 조선과 중국은 간도협약 이전부터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래서 맺은 게 1899년 한·청조약인데 이때 간도 문제를 빼버립니다. 고종은 중국과의 조공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중국과 협상을 통해 대등하게 조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를 독립국에 대한 하나의 징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도 문제를 비워 두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런 원칙이 원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다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일본 일각에서는 한국도 베트남전에 대해 털어낼 것은 털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쪽 연구자가 아니라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다만, 일제의 한국 병합과 같은 수준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체였느냐, 어느 정도 피해를 끼쳤느냐는 문제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주장은 일본 쪽에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내놓는 성격이 짙습니다.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겠지요. 

 

2010년 08월 29일 (일) 16:56  서울신문

 

 

 

 

日 아키타현, 드라마 '아이리스'에 감사장

 

<한국일보>
日 아키타현, 드라마 '아이리스'에 감사장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아키타(秋田)현이 지역 이미지 상승에 공헌했다며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 출연자와 제작자 등 10명에게 감사장을 줬다고 마이니치신문 등 현지 언론이 28일 보도했다. 

아이리스 출연자 중 한 명인 정준하씨와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는 27일 아키타현 현청을 방문해 사타케 노리히사(佐竹敬久) 지사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정씨는 "서울에서 일본에 올 때 비행기가 만석인 걸 보고, 아이리스의 효과를 느꼈다"며 "아이리스를 통해 (앞으로 방영이 예정된) 아시아 다른 나라에도 아키타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키타현은 이 지역의 호수와 온천 등을 배경으로 촬영된 아이리스가 방영된 뒤 서울-아키타 편 항공기의 탑승률이 높아지는 등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자 조만간 촬영될 '아이리스 2'도 아키타에서 촬영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08-29

식민지배는 분단 부른 현재적 사건… 韓日, 역지사지 태도 필요해(한국일보)

 

<<한국일보 특집>>
 
"식민지배는 분단 부른 현재적 사건… 韓日, 역지사지 태도 필요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 대담

진행·정리= 이왕구기자 fab4@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미즈노 나오키 교수

 

정재정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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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조약 공포 이후 36년간 지속된 일제의 한국 강점은 한국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주체적인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유례없는 강압통치는 헤아릴 수 없는 물적ㆍ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꼭 100년이 되는 29일을 앞두고 한일 양국의 중진 역사학자인 정재정(59)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ㆍ60)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25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초래한 양국의 역사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 양국이 진정한 역사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와 비교한다면.
 
▦정재정=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도 식민지 경영을 했지만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예는 없다. 일본이 조선 지배의 명분으로 '동문동종'(同文同種ㆍ같은 한자를 쓰고 같은 황색인종임)을 내세운 것처럼 양국은 역사적ㆍ문화적으로 가까운데, 이런 나라를 식민지화한 경우는 없다. 일본은 또 소위 내선일체를 내세워 성명을 일본식으로 바꾼다든지 일본어 사용을 강제한다든지 하는 강경한 동화정책을 썼는데 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통치방식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식민지사회에 사회, 경제 인프라를 구축했는데 이것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방식이다. 물론 경제개발을 했다고 하지만 그 과실은 주로 일본인들에게 집중됐다.

▦미즈노 나오키=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동화정책을 강화하면서도 차이를 해소하지 않거나 차이를 남긴 채 동화하는 방식이었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은 피지배자의 일부, 엘리트만 동화하려는 정책을 썼다. 가령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의 엘리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프랑스어를 교육해 프랑스 시민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을 전적으로 프랑스 시민으로 대우했다. 반면 일본은 모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하려 했지만 실제로 일본인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본어 상용, 황국신민화정책 같은 것은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정책이었다.

- 논란이 있지만 식민지근대화론에 비판적인 학자들도 식민지시기 조선이 근대적 면모를 갖추게 된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화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정= 식민지근대화론은 평균수명의 증가, 취학률ㆍ무역액의 확대, 도로ㆍ철도의 확충 등을 중시하는 것으로 주로 경제적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특수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된다. 파이는 커졌지만 과연 그 근대화의 과실을 누가 향유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식민지 말기 조선인이 2,500만명, 재조(在朝) 일본인은 70만명이었다. 그런데 조선 자본의 90%가 일본인의 수중에 있었고 대기업과 대토지의 경영자도 일본인이 대다수였다. 이것을 정상적 국민국가의 경제성장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미즈노= 결과적으로는 도시화가 진행됐고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었고, 생활상에 있어서 근대화가 된 부분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조선사회 전체를 봤을 때 근대적인 생활의 혜택은 극소수에게 집중됐다. 식민지 근대의 성격을 해명할 때 경제적 측면을 중시하는 '근대화'와 문화ㆍ사회상을 주목하는 '근대성'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 이식된 근대는 서양적 근대와는 다른 '일본적 근대'라는 성격도 있었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정= 근대화를 '좋은 것' 또는 '이룩해야 할 것'이라는 긍정의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는 정교한 폭력과 강력한 동원이 난무했다.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감안하여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 지난 10일 발표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해 평가한다면.

▦미즈노= 일본 내에서는 담화의 진정성이 불충분했다는 의견과 왜 한국에 몇 번이고 사과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일본 언론매체들은 대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병합조약이 '무효' 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라는 표현은, 내 생각에 그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명한다'고 했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전됐다고 본다.

▦정= 한국병합이 강제적이고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단히 불충분하다. 그러나 기준을 낮춰 보면 3가지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총리가 강제병합 100년에 맞춰 담화를 발표했다는 점,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점,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사할린 한국인 문제의 해결 등 행동플랜을 제시한 점이다. 불충분한 점은 양국이 협의를 통해 진전시켜야 한다.

- 일본 총리가 여러번 사과를 해도 한국인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일본인들은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느냐'라고 불평한다.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정= 한국인들은 피지배자로서, 일본인들은 지배자로서 한국강제병합 이후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때문에 시각 차가 클 수밖에 없다. 역사인식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태를 바라보려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즈노= 일본인과 한국인의 역사인식이 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왜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자세다. 지금까지 일본도 한국도 이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 근현대사 교육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일본이나 식민사관 극복을 역사교육의 지상과제로 삼았던 한국 모두 문제가 아니었을까.

▦미즈노= 일반인들의 역사인식은 교육보다는 오히려 역사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에 영향을 받는다. 요즘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역사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원작으로 한 TV드라마가 인기다. 이 드라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이 강대국이 됐다는 역사관을 깔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TV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정=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을 실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TV도 1년에 두 번, 3ㆍ1절과 광복절을 전후해 역사 관련 특집방송, 드라마를 자주 편성한다. 어떤 시각에서 구성하느냐가 중요한데 얼마전까지 무조건 일본인은 '탄압자', 한국인들은 '저항자'로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식민지시기 다양한 유형의 인간생활을 보여주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리라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는 일본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주시하고 있다.

▦미즈노=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잘될지는 모르겠다. 민주당 정권의 한계가 아니라 일본사회의 한계 때문이다. 냉전기 일본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 선택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 전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아시아 각국들과 대등하게 서로 돕는 관계를 맺기보다는 일본이 중심국가가 돼 이끌어가야한다는 생각이 일본사회에서는 지배적이다.

▦정=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상호의존관계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본, 대중국 교역액은 한국과 미국, 한국과 유럽연합의 교역액을 뛰어넘고 한국과 일본은 1년에 500만명, 한국과 중국은 700만명이 왔다갔다한다. 양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현실적으로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미즈노 교수가 일본의 한계를 말했는데 사실 우리도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긴장되면 미국과 일본에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지역의 냉전을 완화하고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 유럽공동체에서 보듯 지역공동체의 형성은 세계사적 과제다. 한일관계의 발전을 밑거름으로 동아시아공동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미즈노= 민주당이 출범하며 하토야마 전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진전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양국 정부 차원에서는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협정만 맺는다고 동아시아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 차원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광객 수백만명이 오가는 것보다 양국의 시민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 대동아공영권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는 일본이나, 중화제국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유럽공동체를 상상하면 적어도 20~30년이 지나야 가능한 얘기라고 본다. 주권의 상당부분을 공동체에 이양하고 안보도 같이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호 불신과 대립과 갈등으로는 쉽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이 되는 분야부터 함께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불신감도 사라질 것이다.

-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향후 양국 역사학자들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인가.

▦정= 10년 전에 비하면 한일관계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사면 한국사, 일본사면 일본사로 자기 나라 자료로만 연구했는데 지금은 자료 공유의 시대다. 동아시아라는, 더 나아가 세계사라는 폭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한일간 역사대화, 한일 공동 역사교재 편찬에 주력해왔다.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계속한다면 두 나라의 상호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즈노= 10년, 20년 전만해도 한일 역사학자들이 서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의 역사연구자로서 식민지배의 역사를 아직도 해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창씨개명, 황국신민의 서사, 치안유지법 등 식민지하 일상에서의 지배정책을 해명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침략과 지배가 결과적으로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병합은 단순히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일본사회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미즈노 나오키 교수 

▦1950년 교토 출생 
▦1981년 교토대 박사(현대사)
▦2001년~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조선근현대사, 동아시아관계사)
▦2009년~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0년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 서명 
▦저서 <천황제와 조선>(1989) <'아리랑의 노래'각서>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2004ㆍ이상 공저) <창씨개명>(2008) 번역서 <한국민족운동사론>(강만길 저ㆍ1985)

정재정 이사장

▦1951년 충남 당진 출생 
▦1974년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1982년 도쿄대 석사(한국사학)
▦1992년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 
▦1994년~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2003~2005년 제1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 위원 
▦2006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2009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저서 <일제침략과 한국철도>(1999) <역사 교과서 속의 한국과 일본>(2000)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2007) 번역서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2002) <한국병합사연구>(2008) 등
2010-08-29
 
 
 
 
 
 
 
 
 
 

日외상 "韓 문화재 추가인도 없다"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상이 조선총독부가 반출한 도서 외의 문화재 반환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아사히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오카다 외상은 24일 민주당 정책조사회의 외교부문 회의에 출석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한일병합 100년 담화에서 밝힌 조선왕실의궤 등의 '인도'와 관련 "이 것으로 매듭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오카다 외상의 발언은 한국에 돌려줄 문화재를 조선총독부를 통해 입수한 문화재에 한정하고 그 외의 문화재 반환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표명한 것이다"고 해석했다. 

신문은 이어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인도 대상 문화재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한국 측은 조선왕실의궤 외에 제실도서, 경연 등의 인도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한국 측은 조선총독부 시대 이전의 문화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오카다 외상은 '다른 문화재에 대해서는 이미 결착이 끝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李대통령 "한일관계, 뛰어넘을 것 넘어야 발전"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 등 8명의 신임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고 환담했다. 

이 대통령은 무토 대사에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어려운 시기에 한일 관계와 관련한 담화를 발표해 주신 것을 평가한다"면서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은 힘을 합쳐야 하며,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부닥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현 민주당 정권이 전향적으로 하고 있는데 대해 기대가 크다"면서 "뛰어넘을 것은 뛰어넘어야 양국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FTA(자유무역협정)도 양국이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특히 경제는 글로벌 차원으로 협력해서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무토 대사는 "한일간 협력의 여지가 크고 경제적으로 볼 때도 FTA 등 앞으로 공동으로 협력해 나갈 분야가 적지 않다"면서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날 신임장 제정식에는 당초 온두라스 대사로 내정됐던 강영신씨의 사위인 미첼 이디아께스 바라닷 대사도 참석했다. 

 

2010년 08월 23일 (월) 18:35  연합뉴스

 

 

 

 

 

日언론 "한국 반일(反日) 감정 진정"

 

"日정부, '합병 유효' 공식언급 자제키로"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 일본의 일부 언론은 22일로 한일 강제병합 체결 100년을 맞았으나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은 과거처럼 높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이 날짜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 언론은 연초부터 병합 100년을 기념하는 특집기사와 프로그램을 내보냈으나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데다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여는 등 자신감이 커지면서 과거와 같은 반일 감정의 고조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간 나오토 총리가 병합100년 담화에서 식민지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함께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데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