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1월 06일 (수) 17:27 매일경제
`아이리스`에 빠진 日, 닌텐도에 홀린 韓…문화는 통한다
◆ 한·일 新100년을 열자 / ④ 문화는 이미 하나가 됐다 ◆
#장면 1일본프로축구(J리그)의 막바지 순위 경쟁이 한창이던 2009년 12월 초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원정팀 주빌로 이와타 소속 이근호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주빌로 응원단에서 수백 개의 태극기가 등장해 5분 이상 휘날렸다.암울한 일제 식민통치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 선조들은 일본 한복판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태극기가 휘날리는 날이 올 것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장면 2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작년 말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일본식 라면집 하카다분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입장을 기다리며 긴 행렬이 늘어서 있다. 줄 서 있는 대학생들의 대화가 재미있다."넌 얼큰한 삿포로 라면이 좋니? 난 구수한 규슈 라면이 더 좋은데." 이들 한국 신세대의 대화 속에서 한ㆍ일 양국의 과거 역사로 인한 문화적 거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저녁 회식 때 막걸리로 건배를 한 뒤 다음날 북엇국으로 속을 푼다. 전철에서는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집에 가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시청한다.
요즘 일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다. 한국이 일본에 강제 합방된 지 꼭 100년이 됐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가 일본의 안방과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2002년 공동 월드컵 개최, 2003년 이후 지속 중인 한류 붐 등 한ㆍ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 확대는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양국 국민들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데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이자카야에서 니혼슈(일본술)를 즐기며 나가노나 니가타로 스키여행 계획을 세우는 젊은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경이 됐던 아키타현 다자와 호수 일대는 오는 2월 말까지 관광 예약이 끝났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9년 말 성탄절 특집으로 방영된 일본 TBS 가요 프로그램 '카운트다운 TV'는 한 해 동안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가수 10명을 선정했다.
여기서 1위를 차지한 가수는 한국의 인기 그룹 '동방신기'였다. 가미지 유스케와 니시노 가나 같은 내로라하는 일본 인기 가수들도 동방신기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헐값'으로 대우받던 시기는 이제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최근 방영된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는 50억원을 받고 일본에 방영권을 수출했다. 현대자동차 '쏘나타'(대당 2500만원 기준) 20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작년 12월 17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류스타 사천왕(이병헌ㆍ장동건ㆍ송승헌ㆍ원빈) 팬미팅 때는 5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스이도바시 일대 교통이 마비됐을 정도였다. 당시 2시간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지불한 평균 입장료는 1만5000엔(약 20만원)이었다.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식 인사말도 일본 TV의 토크쇼에서 수시로 튀어 나온다. 토크쇼 진행자들은 아예 "~했어요"나 "~하세요" 등 한국어 접미사까지 흉내 내면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도쿄 시내에서 한국어 전문 어학원은 100개를 넘어섰고 공영방송 NHK의 한국어 강좌 교재도 매월 5만~10만부가량 팔리며 꾸준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강기홍 주일대사관 문화원장은 "드라마에서 출발한 한류 붐은 한국말 배우기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 음식, 한국 여행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서점가에서 일본 소설은 변두리 상품이 아닌 주류 중 주류로 대접받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필독 독서로 간주되고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요, 쓰지 히토나리 등은 웬만한 국내 작가의 인기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닌텐도의 DS게임기나 도요타의 렉서스, 시세이도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대중 소비제품들이 국내 시장에서 아무런 저항감 없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10년 전 '렉서스'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도요타는 지난해 하반기 '캠리'와 '프리우스' 등 대표 모델을 한국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나섰다.
일본 드라마에 빠져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오게 됐다는 릿쿄대 2학년생 황은혜 씨(23)는 "일본 드라마라서 즐겨 본 게 아니라 그냥 재미 있고 취향에 맞기 때문에 좋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세대에도 한ㆍ일 간의 역사의식은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가 일본 문화에 대한 호불호를 나누는 기준은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매일경제신문ㆍ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공동기획
[기획취재팀=팀장 변상호 차장 / 허연 차장 / 도쿄 = 채수환 특파원 / 신현규 기자]
#장면 1일본프로축구(J리그)의 막바지 순위 경쟁이 한창이던 2009년 12월 초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원정팀 주빌로 이와타 소속 이근호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주빌로 응원단에서 수백 개의 태극기가 등장해 5분 이상 휘날렸다.암울한 일제 식민통치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 선조들은 일본 한복판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태극기가 휘날리는 날이 올 것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장면 2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작년 말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일본식 라면집 하카다분코.
저녁 회식 때 막걸리로 건배를 한 뒤 다음날 북엇국으로 속을 푼다. 전철에서는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집에 가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시청한다.
요즘 일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다. 한국이 일본에 강제 합방된 지 꼭 100년이 됐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가 일본의 안방과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2002년 공동 월드컵 개최, 2003년 이후 지속 중인 한류 붐 등 한ㆍ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 확대는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양국 국민들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데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이자카야에서 니혼슈(일본술)를 즐기며 나가노나 니가타로 스키여행 계획을 세우는 젊은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경이 됐던 아키타현 다자와 호수 일대는 오는 2월 말까지 관광 예약이 끝났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9년 말 성탄절 특집으로 방영된 일본 TBS 가요 프로그램 '카운트다운 TV'는 한 해 동안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가수 10명을 선정했다.
여기서 1위를 차지한 가수는 한국의 인기 그룹 '동방신기'였다. 가미지 유스케와 니시노 가나 같은 내로라하는 일본 인기 가수들도 동방신기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헐값'으로 대우받던 시기는 이제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최근 방영된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는 50억원을 받고 일본에 방영권을 수출했다. 현대자동차 '쏘나타'(대당 2500만원 기준) 20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작년 12월 17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류스타 사천왕(이병헌ㆍ장동건ㆍ송승헌ㆍ원빈) 팬미팅 때는 5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스이도바시 일대 교통이 마비됐을 정도였다. 당시 2시간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지불한 평균 입장료는 1만5000엔(약 20만원)이었다.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식 인사말도 일본 TV의 토크쇼에서 수시로 튀어 나온다. 토크쇼 진행자들은 아예 "~했어요"나 "~하세요" 등 한국어 접미사까지 흉내 내면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도쿄 시내에서 한국어 전문 어학원은 100개를 넘어섰고 공영방송 NHK의 한국어 강좌 교재도 매월 5만~10만부가량 팔리며 꾸준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한국 서점가에서 일본 소설은 변두리 상품이 아닌 주류 중 주류로 대접받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필독 독서로 간주되고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요, 쓰지 히토나리 등은 웬만한 국내 작가의 인기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닌텐도의 DS게임기나 도요타의 렉서스, 시세이도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대중 소비제품들이 국내 시장에서 아무런 저항감 없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10년 전 '렉서스'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도요타는 지난해 하반기 '캠리'와 '프리우스' 등 대표 모델을 한국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나섰다.
일본 드라마에 빠져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오게 됐다는 릿쿄대 2학년생 황은혜 씨(23)는 "일본 드라마라서 즐겨 본 게 아니라 그냥 재미 있고 취향에 맞기 때문에 좋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세대에도 한ㆍ일 간의 역사의식은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가 일본 문화에 대한 호불호를 나누는 기준은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매일경제신문ㆍ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공동기획
[기획취재팀=팀장 변상호 차장 / 허연 차장 / 도쿄 = 채수환 특파원 / 신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