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수요집회 1000회 어찌 보나

 

[사설] 일본 정부는 수요집회 1000회 어찌 보나<세계일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1992년 1월8일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오늘로 1000회를 맞았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간 강산이 두 번 변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는 234명이다. 이 가운데 최고령(94세)인 박서운 할머니가 지난 4일 중국 지린성에서 타계한 데 이어 어제 김요지 할머니가 87세로 숨을 거둬 생존자는 63명으로 줄었다.

첫 수요집회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열렸다. 그 후 20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열리고 있다. 1995년 일본에서 고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시위 없이 해산한 적이 있을 뿐이다. 1000회는 세계 단일 집회 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한을 웅변한다. 

일본 정부는 마이동풍이다. 위안부 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식민지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만 되풀이한다. 고장난 축음기가 따로 없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한 것이라고는 강제노역 피해를 당한 할머니 7명에게 개인당 99엔, 우리 돈으로 1460원을 배상하는 시늉을 한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정식 배상이 아니라 후생연금 탈퇴 수당 명목으로였다. 유엔 인권소위원회가 1998년 일본 정부의 배상을 요구한 ‘맥두걸 보고서’를 발표했는데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오죽하면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위안부 배상 문제에 국가가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을까. 정부는 냉방에서 자며 폐지를 팔아 모은 전 재산 3000만원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달라”며 기부한 황금자(87) 할머니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하나 둘 삶을 마감하고 있다. 올해에만 16명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 정부는 이들이 모두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 앞에 두 번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입력 2011.12.14 (수)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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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요집회 1000회 피맺힌 절규<세계일보>

위안부 문제 해결 묵묵부답의 日 더 늦기전 공식사죄·배상 나서야

일본에서는 K-팝의 인기 걸그룹 카라가 NHK의 가요홍백전에 나오게 된 것이 연일 화제이다. TV에서는 한류 드라마가 하루에 두 편 이상 방영될 만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뿐인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발전을 소개하면서 ‘한국모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까지 한다. 이제 일본인들은 한국을 부러운 이웃으로 바라보면서 현재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서 과거의 그늘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오늘로 1000회를 맞이하게 됐다. 이 할머니들의 피맺힌 외침은 20년간 지속돼 집회 횟수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처절했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며 요지부동으로 일관했다. 수요시위 1000회를 맞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세운다고 하면서부터 일본 정부도 그제야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듯하다.

한·일 간에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갭이 아직도 크다. 첫째, 일본 내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 팽배하다. 심지어 일본이 한국에 반성과 사죄를 하면 할수록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후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고 한국을 비난하기조차 한다.

그 예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한 민간기구인 아시아여성기금을 들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했지만, 한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의 상황에서 본다면 아시아여성기금은 상당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도 아시아여성기금이 너무 앞서간다고 많은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배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전후 처리라는 틀 속에 얽매여 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하원이 각각 권고안과 결의안을 내면서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배상 책임이 없다’며 계속 버티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된 할머니 7명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이라며 1인당 99엔을 지급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은 국제사회와 한국의 비난에 대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의 청구권협정 체결로 위안부의 배상 청구권 문제 등은 법적으로 최종 해결이 끝났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의 해법은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보다 외교행위의 특수성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결정해 한·일 교섭을 촉구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끝까지 법적인 문제를 이유로 청구권과 배상을 거절한다면 과거사 해결의 실마리는 찾기 힘들 것이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는 6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령과 병환에 시달리는 할머니들은 더 이상 기다리기에 시간이 없다. 일본 정부는 전후 독일이 했던 미래재단과 같은 구상을 시급히 실행해야 한다. 미래재단 설립의 전제조건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공식 사죄와 정부의 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여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입력 2011.12.14 (수)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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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죄하라!' 1천번째 함성 울리다>(종합)


1000차 수요집회 인파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참가한 시민들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1. 12. 14

평화비도 제막..日 반발에 관할 지자체 난색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승욱 기자 = "일본은 전쟁범죄 인정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공식 사죄하라. 법적으로 배상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역사 교과서에 기록하라. 추모비와 사료관을 건립하라!"

1992년 1월8일부터 20년 가까이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울리던 외침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매주 수요일 정오 진행해 온 수요집회가 14일로 1천회를 맞았다.

`20년'과 `1천회'라는 숫자의 상징성 때문인지 이날 집회에는 늘 집회를 이어 오던 할머니와 정대협 관계자들 외에도 국내외 취재진과 정치권 인사, 일반 시민 등 3천명(경찰 추산 1천명)이 몰려 대사관 앞 도로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 집회 역사상 최장인 `20년간 1천회' 기록을 세운 피해 할머니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집회를 통해 이뤄낸 것도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는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13살에 만주로 끌려간 길원옥(84) 할머니는 "일본인들이 사죄하지 않는데 1천회라고 다를 게 있느냐"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다시는 우리나라에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김복동(85) 할머니는 "일본 대사는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며 "이명박 대통령도 일본 정부에 대해 과거 잘못을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일본 정부한테는 매우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날"이라며 "한국 정부도 피해자들을 20년간 거리에 방치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만큼 계속 방관하고 위헌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제1000차 수요시위, 평화상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길원옥(오른쪽), 김복동(왼쪽) 할머니등이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1. 12. 14

정대협은 이날 집회에 앞서 위안부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평화비'를 애초 예고한 대로 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설치했다.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건립된 평화비는 단발머리에 한복 차림을 한 위안부 소녀가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 130㎝다. 소녀 옆에는 빈 의자가 마련돼 있다.

윤미향 대표는 "꼭 수요일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이 소녀 옆에 앉아서 일본 대사관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손을 잡아주거나 추울 때 모자를 씌워주는 등 자발적으로 위로와 연대를 표시하도록 한 시설물"이라고 평화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평화비 건립에 대해 "양국 외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놨고, 외신에 따르면 이날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이 평화비 철거를 한국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으나 일본 대사관은 잠잠했다.

오전 중 정대협 관계자들이 평화비를 설치하는 모습을 대사관 관계자 서너명이 지켜보긴 했으나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정오께 수요집회가 시작하고 나서도 대사관 건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연신 움직이며 현장을 훑었을 뿐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그러나 평화비 건립이 외교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관할 자치단체는 매우 난감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애초 관할 종로구는 지난 3월 정대협의 평화비 건립 신청을 받고 도로법 등 관련 법령을 검토한 끝에 문제가 없다며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로부터 문제제기가 들어오자 외교통상부가 일본 측 입장을 종로구에 전달했고, 구는 1천회 집회를 앞두고는 추모비 설치 허가와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으며 논의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제1000차 수요시위, 평화상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제1000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길원옥(오른쪽), 김복동(왼쪽) 할머니등이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를 쓰다듬고 있다. 2011. 12. 14

윤미향 대표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승인을 어디서 받고 안 받고는 우리가 고려할 부분이 아니다. 의지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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