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성공 보며…" 일본의 쓰라린 반성

韓流보며 반성, 서울 지사 설립 연예인 1000명… 日流로 도전"
日최대 엔터테인먼트 업체 요시모토흥업 오사키 사장
"연예기획사가 증시 상장하는 사례는 한국에서나 있는 일"

"한류(韓流)의 성공에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정부 모두 반성하고 있다. 이제 일류(日流)가 적극적으로 도전할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한일전(韓日戰)은 좋은 경쟁이 될 것이다."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의 오사키 히로시(大崎洋·59) 사장. 회사 창업 100주년을 한달여 남짓 앞둔 지난 22일 Weekly BIZ와 만난 그는 한류에 맞서는 '일류(日流) 수출의 선봉장'을 자임했다.

올 1월 요시모토흥업이 선포한 '앞으로 100년 사업계획'도 해외진출을 핵심 기치로 내걸었다. 일본 드라마와 가수를 외국 시장에 대거 내보낸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요시모토흥업은 최근 서울에 지사를 냈고 미국·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합작해 TV 프로그램 공동제작에도 나섰다. 오사키 사장은 "스타를 수출하는 한류와 달리 일류는 일본의 음식과 패션을 포함한 라이프 스타일 수출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1912년 창업한 요시모토흥업은 1000여명의 연예인을 거느리고 매주 40편이 넘는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제작, 지상파 방송사에 공급한다. 100년 전 오사카에서 만담(漫談)극장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지금도 10여곳의 라이브 하우스(live house)에서 매일 공연을 한다. 라이브 공연에서 검증된 코미디언과 탤런트 등으로 TV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오사키 사장은 1978년 요시모토흥업에 입사해 연예인 매니저를 거쳐 연예 기획자로 만담 붐(boom)을 주도하며 이름을 날렸다. 2009년 사장을 맡은 그는 '요시모토흥업 르네상스(Rennaissance·부흥)'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요시모토흥업의 100년 번영 비결과 관련, "상호 신뢰가 바탕에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함께하려면 수익문제에 있어서 절대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을 하면 언젠가는 들통이 난다. 그렇게 되면 신뢰가 깨진다. 이런 신뢰가 요시모토흥업 100년 성장의 뿌리가 됐다."

WeeklyBIZ가 요시모토흥업의 오사키 히로시 CEO를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이 왜 상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요시모토흥업의 오사키 히로시(大崎洋)사장은 한국에서 최근 붐을 이루는 연예 기획사들의 증시 상장(上場) 붐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요시모토와 합작하자는 제안이 많았지만 대부분 증시상장을 통해 돈을 벌려는 게 목적이어서 거절했다"고 했다.

오사키 사장은 2009년 요시모토흥업의 상장 폐지를 주도했다. 현재 요시모토흥업의 주주는 후지TV, 니혼TV, TV도쿄, 소프트뱅크, 야후 등 주요 방송사와 통신사, 인터넷 업체들이다. 그는 "제조업체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없는 연예기획사가 증시에 상장하는 사례는 유럽과 미국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우리가 60년 전에 상장했던 것은 당시 전국적으로 극장을 만들기 위한 투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사들이 상장하는 목적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우수한 직원을 뽑는 것과 대규모 투자를 위한 것인데, 이미 우리는 충분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어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오고 있으며 대규모 투자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오사키 사장은 또 "요시모토흥업은 모두 가족이다. 우리는 계약서가 없으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절대 신뢰하고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요시모토흥업은 일본에서도 예외적으로 소속연예인과 에이전시(대행)계약을 맺고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다. 막대한 계약금을 주면서 연예인을 스카우트하는 다른 기획사에 비해 고정비 부담이 적은 구조이다.

계약서 없고 엄격·예절 중시하는 요시모토 시스템

―요시모토흥업의 최대 경쟁력을 꼽는다면.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며 그 본령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에이전트, 패션, 영화제작 등 여러 사업을 하지만 다 본업과 관련된 일이다. 특히 우리는 탤런트 육성부터 매니지먼트, 라이브 하우스, 프로그램 제작을 모두 담당해 변화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고 수익도 낼 수 있다."

―탤런트들은 어떻게 키우나.

"1년 과정의 양성 학교를 2곳(정원 1000명)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를 통해 서로 만나 절차탁마하는 장소를 제공한다. 그곳에서 서로 경쟁하고 자율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학교 출신자들이 우리 회사의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하면서 실력을 닦아 나간다. 극장에서 선배와 같이 지내면서 예의를 배우고 분위기를 배운다. 관객의 반응을 몸 전체로 느끼는 것이 대중과 접촉하는 것이다." 요시모토흥업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선후배 관계가 가장 엄격하고 예절 바른 연예인들이 많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에서는 기획사가 가수 등에게 불리한 계약조건을 강요하는 노예 계약으로 인해 문제가 됐다.

"한국에 그런 계약이 많은가. (한국에서는 사회문제가 됐다고 답하자 신중한 표정으로) 우수한 탤런트를 육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걸 노예계약으로 말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익금의 적정배분은 필요하다. 적정배분은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르다. 좀 더 오픈하게 합리적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요시모토흥업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한류의 성공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도 모두 반성하고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일(韓日) 두 나라가 합치면 미국도 공략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기획사들이 손을 잡기에는 사업방법 등이 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보고 사업을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일본 각 지방에 직원과 연예인들을 파견하는 사업도 하고 있는데.

"이것도 해외진출 전략의 하나이다. 우리 사원들과 연예인들도 지방의 음식과 특산물,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지역에 파견된 직원들이 지방에서 해외로 팔릴 수 있는 특산물을 찾아내면 우리가 만드는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적극 알리고 수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일본의 지방을 활성화할 뿐 아니라 우리 제작의 자산이 된다. 한국이 스타를 수출하는 전략이라면, 우리 일본은 라이프 스타일을 수출할 것이다." 요시모토흥업은 지난해 5월에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 직원과 연예인을 배치했으며 올 4월에는 각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상설전시장을 오사카에 연다.

▲ 올 4월 창업 100주년을 맞는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요시모토흥업의 오사키 히로시 사장 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도쿄=차학봉 특파원 hbcha@chosun.com

한류 드라마는 30~40년 전 일본 드라마의 닮은꼴

―K팝이 일본을 휩쓰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K팝은 일본에 비해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동남아·중국·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J팝도 앞으로 적극 해외진출을 할 것이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J팝 가수들도 국내시장만으로 충분히 큰돈을 벌 수 있어 해외 진출을 잘 하지 않았다. 한국은 시장이 적다 보니 출발부터 해외를 겨냥해 완성도 높은 스타들을 만들어왔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스타 의존형 구조라면 일본은 실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밀한 연예인들을 선호한다. 완성도가 낮은 아마추어적인 가수를 데뷔시켜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다. 이런 일본식 시스템도 강점은 있다. 팬들은 이웃 같은 스타들을 통해 스타의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좋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한국 드라마는 일본 과거 드라마의 패턴이다. 한국 드라마는 30~40년 전 일본에서 유행하던 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인 측면이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추억의 대상이다 보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의 버블이 무너지면서 없어진 것들을 한국이 다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0~80년대 한국 드라마보다 앞섰다던 일본 드라마가 해외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일본드라마는 시리즈물이 12~13편 정도인데, 미국·한국·중국 등 글로벌스탠더드는 24~30편이다. 국제규격에서 멀어졌다. 드라마의 스토리도 너무 일본식이다. 일본인들은 편한 내용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스토리가 너무 격렬하고 감정변화가 심하면 일본인들이 편하게 보기 어렵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편한 드라마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을 겨냥해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해외에서는 인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근본적으로 일본에서만 장사를 해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어 해외진출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 수출용 드라마도 본격적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