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마네현 여행은 정말 끝내줬다! / 강규리(과천여고)

 

 

이번 시마네현 여행은 정말 끝내줬다! / 강규리(과천여고)

 

나는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었던 일본 시마네 현 봉사캠프 안내문을 보자마자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가면 심심할까봐 작년에 일본 시라하마 현으로 함께 어학연수를 떠난 소연이와 함께 신청했다. 나는 꽤 소심한 편이라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질 못했는데 소연이가 먼저 효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수빈이, 인아, 효림이, 수민이와도 친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는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양에 놀랐다. 사진으로 한 번 놀라고 실물로 두 번 놀랐다. 처음엔 도저히 사람이 치울 수 있는 양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를 주웠는데 대부분 ‘박카스’나 ‘유한락스’같은 한국 쓰레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부러 버린 쓰레기 같아서 무척 부끄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쓰레기는 태풍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 밀려온 거라 안심했다. 그래도 나는 한국 사람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했다. 청소가 끝나고 뒤돌아보니 무척 깨끗한 바닷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하면 무리겠지만 모든 사람이 협동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청소년들은 가끔 농땡이를 피우고 가만히 있는 애들도 있었지만 일본 청소년들은 말없이 묵묵히 열심히 하기에 감탄했다.

 

이번 기회는 청소를 하며 일본 청소년과 교류하라고 준 기회인데 교류는 내 성격상 잘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역시 협력의 힘은 굉장한 것 같다. 봉사활동이 완전히 끝나고 우리는 쓰레기 처리공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운 쓰레기들이 재활용되는 장면을 관찰했다. 쓸모없는 쓰레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되다니……. 이런 재활용 사례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적 같은 일을 두 번이나 겪고 나서야 한국에도 이런 활동과 시설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봉사를 분명히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청소년의 집’ 아니, 사실은 ‘청소의 집’이다. 겉은 청소년이 머무는 숙소나 다름없지만 속은 청소년이 청소하는 집이다.

 

보통 숙소는 관리인들이 정리하기 마련이지만 전부 우리가 해야 했다. 그것이 이 집의 규칙이자 법이다. 하지만 방 안은 넓어서 행복했다(한편으로는 넓어서 치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관광명소도 많이 방문했다.

 

하지만 그날 바람이 너무 세서 버스 안에서만 죽치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사진은 많이 찍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야 그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다.

 

관광명소보다는 음식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맛있는 것도 많았지만 맛없는 것도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특히 제일 맛있었던 건 아무래도 사시미(회). 나는 일본에 오면 스시와 사시미를 꼭 먹는데, 특히 이번 건 더욱 맛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회는 연어회지만 이번에는 연어가 별로 없어서 좀 아쉬웠다. 시마네 현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마네 현의 대표캐릭터, ‘시마넷코’와 오래된 요괴만화, ‘게게게노 기타로’의 캐릭터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게게게노 키타로의 네코무스메는 너무 매력이 넘쳐서 맘에 들었다. 역시 일본은 한국과 달리 캐릭터의 천국이라서 그런지 이런 캐릭터상품이 많이 활성화 되어있는 것 같다. 한국에도 이런 캐릭터 시장을 공략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홈스테이도 했다. 나는 수빈이와 사노 씨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사노 씨는 딸이 세 명 있는데 두 명은 결혼해서 살림을 차렸고 한 명은 오사카로 여행가서 모두 만나질 못했다. 하지만 사노 씨와 사노 씨 남편뿐만 아니라 이소다 씨 가족, 카토 씨, 야스다 씨 가족, 이우에(?) 씨, 시노하라 씨 가족, 아이리 짱과의 만남으로 인해 홈스테이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첫째 날에는 마쓰에 포겔 파크에 갔다. 식물과 조류가 어우러진 큰 공원인데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그 안에서는 칠석 특집으로 소원을 적어 비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에 합격하는 것을 적었다. 수빈이는 서울대학교 합격을 적었는데 우리 둘 다 소원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소원을 적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펭귄을 보러갔는데 그냥 가만히 서 있기에 별로 재미없었다. 포겔 파크를 나서서 시지미관을 방문했다. 시지미란 한국어로 가막조개인데 이소다 씨 남편이 잡는다고 하셨다. 이소다 씨 남편 분은 정말 젊어 보일 뿐더러 잘생기셨는데 그런 멋진 일까지 한다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시지미관을 나와 야에코신사(?)에 갔다. 그 곳에는 결혼을 점치는 연못이 있어 시험 삼아 나도 해봤다.

 

나는 가까운 사람과 빨리 결혼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수빈이는 가까운 사람과 늦게 결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빈이를 놀리며 사노 씨 집으로 도착해 낮잠을 잤다. 5시에 일어나서 마을 마쯔리에 나갈 준비를 했다. 카토씨 집에 가서 유카타를 빌려 입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내가 아니라 유카타).

 

밤이 되자 사노 씨와 수빈이와 함께 마쯔리에 나갔다. 마을 마쯔리라 그런지 소규모였지만 행사는 크고 재밌었다. 특히 마지막에는 사노 씨와 나와 수빈이, 그리고 다른 홈스테이 여자애들(이름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과 함께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 기회를 통해 나의 소심함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즐거운 밤이었다.

 

유카타를 반납하러 다시 카토씨 집에 들렀는데 웬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나는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마니아다.

그래서 암컷 모모와 수컷 아스케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모모는 날 별로 피하진 않았지만(많이 피했지만 아스케가 훨씬 많이 피했다) 아스케는 날 혐오하듯이 도망갔다. 좀 섭섭했지만 고양이를 보기만 해도 내 몸 속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우에(?)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일본 전통악기를 배웠다.

처음에는 그냥 버튼을 살짝 누르며 줄을 퉁기는 거라 쉽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무척 어려웠다. 사노 씨가 숙련된 손놀림으로 줄을 퉁기는 것을 보고 무척 노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근처 학교의 마쯔리도 갔다. 우리는 그 곳에서 킹교스쿠이(금붕어 낚기), 요요쯔리(요요낚시), 스파보루스쿠이(탱탱볼낚기) 등의 게임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카이텐즈시(회전초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당연히 연어초밥을 세 접시나 먹었다. 그렇게 스시를 먹고 바로 마쓰에 성 주변을 도는 호리카와 유람선을 타러 갔다.

 

거기서 사노 씨 친구 딸 아이리 짱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는 함께 일본 제일의 바리스타 가게에 갔는데 커피 향이 무척 좋았다. 특히 크림으로 동물모양을 만들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저녁밥은 오코노미야끼(일본의 빈대떡)가게에서 먹었다. 난생 처음으로 먹는 오코노미야끼는 사실 별로였다. 소스 없이는 싱거웠으며 소스를 곁들이면 좀 짰다. 그래서 실례지만 3분의 1만 먹고 남겼다. 아무래도 즐겨먹기는 힘든 음식이다.

 

집에 가는 길에 백엔샵에 들려서 후린(풍경)을 샀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건데 드디어 살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다. 현재 우리 집 거실 천장에 달려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땡땡’소리가 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에 도착해 아이리 짱과 함께 닌텐도 wii를 했다. 너무 재밌어서 밤 11시까지 하다 잠이 들었다.

 

홈스테이 가족과 이별을 한 후 청소의 집, 아니 청소년의 집으로 다시 왔다. 그곳에서 마지막 밤을 잔다고 하니 너무 서러웠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 남자애들은 다 우리 방에 모여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다. 물론 피곤해서 완전히 새지는 못했다.

 

이번 시마네 현 여행은 정말 끝내줬다.

특히 짜다는 뜻의 ‘시오카라이’와 ‘숍빠이’의 미묘한 차이점을 오구라 씨를 통해 대충 알게 되었고, 일본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특성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피해를 받는 것 또한 무척이나 싫어한다(한국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일본이 더 심한 것 같다).

 

그래서 첫날 밤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그런지 같은 층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화를 내셨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이러이러한 교훈을 얻고 돌아오면서 한 생각은 다시 한 번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참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