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50년 전문가 제언> 오코노기 "美中의 균형자 돼야"

인터뷰하는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내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69·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명예교수가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모습.

"군위안부 법적으로는 해결 못 해"…"아베담화에 침략·식민지 반성 포함돼야"


<※오는 6월22일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과 4개 부속협정이 체결된 지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수교 50주년을 앞둔 지금 양국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일 기본조약 체제 아래의 지난 50년 양국관계를 '한일관계 1.0' 시대로 규정하며, 앞으로는 주변 환경과 양국 상황 변화를 고려한 '한일관계 2.0'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연합뉴스는 한일관계의 현주소와 반복되는 역사갈등·대립의 원인 등을 진단하고, 동북아 안보 환경의 급변 속에서 과거 반세기의 반목을 딛고 새로운 한일시대를 열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양국 정부와 국민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등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 내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22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송고합니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내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69·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명예교수는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양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각축장이 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으로 균형자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이라는 대외환경의 변화 속에 한일 양국이 공통분모를 찾아 나감으로써 아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또 한일관계의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군위안부 문제는 문제의 최종적 해결을 전제로 과거 아시아여성기금과 같은 제도를 부활시키는 길이 현 상황에서는 최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인 올해 8월15일을 즈음해 발표할 역사인식 담화(일명 아베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오코노기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에서 오랜 세월 한일관계를 지켜본 입장에서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감상은 어떤가.


▲외교관계가 없었던 전후(戰後) 20년, 뒤이어 정치·경제 체제의 괴리와 마찰로 고뇌하던 시절 지금처럼 자유롭고 대등한 교류와 토론은 상상도 못했다. 과거 일한관계는 분명히 양국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그 성공을 축하한다. 현재의 갈등과 대립은 양국 관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계에 들어선 것을 보여준다. 성공에 취해 적절히 관리하는 것과 개혁하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의 한일갈등과 과거 갈등은 어떻게 다른가.


▲현재의 양국관계 자체가 포스트 냉전 시대와도 다른,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냉전 시대에 한국은 군사정권 체제였고, 경제적으로도 (한일은) 수직적인 관계여서 경제적으로 긴밀할수록 일한관계는 종속적으로 되어 간다는 등의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납치사건(1973) 등의 예에서 보듯 당시 양국 관계 갈등의 원인은 체제의 차이에 따른 측면이 컸다.


그러나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해 민주화됐고,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났다. 국제 공조의 시대인 1990년대에 일본은 고노(河野)담화, 무라야마(村山)담화를 냈다. 두 나라 체제의 마찰은 이 단계에서 해소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은 오히려 한일의 전통문화와 민족주의의 충돌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의 문제도 나오고 있다. 한일 간의 법률 문화는 전혀 다르다. 일본인은 법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시하고, 한국은 내용상 옳으냐를 중시한다.


한국은 군위안부 문제도 '정의'와 '도덕'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반면 일본으로선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법적으로 한번 해결한 것을 다시 하자고 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하는 불신을 갖게 됐다.


--일본내 혐한 여론, 한국내 반일 여론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 문화는 논쟁에 익숙하다. 그러나 일본 문화는 논쟁하면 관계가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아베 정권의 행보 등에 대한) '논쟁'을 바탕으로 일본을 비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은 상대(한국)가 일본에 나쁜 감정이 있기 때문에 비난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일본인의 혐한은 '한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줄 알고 있으니,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즉 일본인은 한국 쪽에 일본을 향한 악감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쟁을 하면 할수록 한국을 싫어하게 된다. 여론의 문제를 말하자면 일본이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호감이) 떨어지는 쪽이 빠른 만큼 회복될 때에는 빨리 회복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에는 아직 청산하지 못한 전후 보상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관계를 확립할 때까지 주변에서 우회적으로 대응해 문제를 작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사려 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군위안부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법률에 관한 전통문화가 크게 달라 한국이 군위안부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결하려 하면 양쪽 주장이 서로 어울릴 수 없다.


징용 노동자 문제는 이미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과거에 전혀 보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법률적으로 다툰다면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고 끝내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피해자 지원을 했지만, 그것을 받지 않은 군위안부 피해자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일본이 해결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아시아여성기금은 일본의 시민 단체가 인도적인 면에서 시작한 것이고, 거기에 일본 정부도 협력한 것이니 그 틀을 부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정말 군위안부 문제가 종결되는 것이냐'는데 대해 일본 측이 의심을 하고 있다. 일본 측에서는 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해 한국 측에 '의사 통일'이 돼 있지 않다고 본다. 군위안부, 지원 단체, 정부 중 어느 쪽 의사를 존중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이다.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단일한 요구를 한국 측에서 일본에 제시해야 한다고 보는가.


▲피해자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그 나라 NGO(비정부기구)는 법률적 문제를 말하지 않고 군위안부 피해자 의견을 존중했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한국 피해자의 목소리에 '플러스 알파(+∝)'가 붙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피해자와 NGO의 관계는 어느 나라든 있지만 한국의 경우 NGO가 강력하다. 만약 군위안부 피해자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게 되고, 한국 정부도 그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NGO가 반대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일본 쪽에서는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관계 개선을 위해 한일 지도자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나


▲(이르면 3월 열릴) 3국(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어떻게든지 정상회담에 연결해야 한다. (다자 회담의 계기가 아닌 별도의) 일한 정상회담은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아베 정권은 작년 총선에서 이긴데다, '한국에 양보할 필요가 있는가', '조건부 회담에 응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가 총리 주변에서 커지고 있다. 한국 측으로서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저하하는 가운데 일본에 양보하기 어렵다.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한중일의 틀이 있기 때문에 3국 외교장관 회담을 빨리해서 일한 국교정상화 협정 체결 50주년인 6월22일 이후라도 3국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하면 첫 일한 정상회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본다. 그러나 거기서 역사 문제가 해결될지는 별개 문제다. 본래는 (양국관계 악화는) 정치 지도자가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3년을 보면 쉽지 않다. 정상간의 갈등이 3년간 지속되면 관료 기구는 움직이지 못한다. 유연성도 창의성도 없어진다. 보신을 위해 자기 나라 지도자의 입장을 변호하게 된다. 그렇다면 민간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 경제계, 학계, 시민간 교류도 포함해 민간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는 올해 여름 '전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는가.


▲전후 50주년 담화(무라야마담화), 60주년 담화(고이즈미담화)와 같은 '사죄와 반성'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자극하면 양국간 역사 갈등이 더 커지게 된다.


--아베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이라는 말을 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중요하다. 전후 70주년 담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잘못 사용하면 일한, 일중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잘못하면 일미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아베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론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느낌으로는 (아베 총리는) 가급적 그런 것을 언급하지 않는 형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세계적으로 '역사 수정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베이징에서 9월3일 2차대전 종전 기념행사, 즉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행사가 열리는데 한국, 미국, 러시아, 거기에 북한 정상까지 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갈 수 있다. 베이징에서 일본 주변 4개국 정상이 모여 역사 문제로 일본을 비판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최악시할 일이다. 그런 것을 일본 정부가 얼마나 염두에 두고 있는지 조금 불안하다.


--일본 총리가 전후체제에서 탈피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나아가려 하는데, 그럴수록 과거의 침략 사실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평화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보통국가가 된다면 좋지만 (아베 총리) 스스로 의심을 초래하는 부분이 있다. '역사수정주의'라는 지적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의 현 리더십(지도자)은 예외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정권에서 이렇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북아 안보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역사 인식 문제 등에서 중국과 연대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갈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은 없을까?


▲양국관계보다 중국의 대국화에 뒤따르는 국제 시스템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 외교는 냉전 시대의 '한미일 시스템'에서 포스트 냉전 시대에 '한미일+전방위' 시스템으로 이행해 이제는 '한미중+전방위' 시스템이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상대에 대한 낡은 전통적 이미지가 부활했다. 일본인은 최근 한국 외교를 비판할 때 '사대주의 외교'를 이야기한다. '결국 한국인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이미지다. 한편, 한국인도 일본이 옛날로 돌아가 무력에 의존하고 무위(武威)를 자랑하는 외교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군국주의' 회귀라기보다는 보통국가로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그렇다. 그 '보통국가'의 정도는 한국보다 실은 더 낮다. 서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일간의) 역사 논쟁을 일시 멈추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한미중+전방위 외교'를 이야기했는데, 중국의 대두 속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외교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한국 외교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가운데에 한국의 역할을 찾고 있다. 과거(노무현 정부때) 나온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것이 있다. 균형자에게는 미국과 중국의 힘을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단독으로 할 일이 아니라 일본, 동남아(ASEAN) 국가들과 함께 할 일이다. 그것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축'과, 그 주변의 '전방위'를 합치면 그런 역할이 나온다. 그것은 사실은 일본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시아 태평양의 장래를 미·중이 결정한다는 말은 틀렸다. 아태지역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미·중 사이에 있는 나라들이다. 일본도 한국, ASEAN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에 외교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일한의 공통 분모를 찾아 나가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질 높은 것으로 확대하고 안보면에서 공유하는 인식을 확인해야 한다.


--양국에서는 세대 교체도 일어나고 있다. 미래 지향의 새로운 한일 시대를 열어 한국의 반일, 일본의 혐한을 종식시키기 위해 양국 정부, 국민, 또 각 세대는 각각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일한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아서는 안 된다. 양국간 경제적 상호 의존의 진전을 보면 정치적 리더십이 얼마나 늦어 버렸는지 이해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양국의 공통 분모을 찾기 시작해 새로운 공통 이익과 공통 역할을 탐구해야 한다.10년 정도 노력하면 미·중·러에 둘러싸인 중급 선진 공업국가로서 일한 공통의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오코노기 마사오 = 군마(群馬)현 출신으로 1969년 게이오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연세대에서 유학했으며,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 '한국전쟁-미국의 개입 과정(1986)', '일본과 북한·앞으로 5년-남북통일에 대한 관점과 시나리오(1991)' 등을 저술한 일본내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 총리 자문기구인 '대외 태스크포스'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2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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