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겉은 비슷한데 韓-日속이 다르네

[동아일보]
한일 공통 간식, 삼각김밥 탐구


삼각김밥은 작은 혁명이었다.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밥을 그것도 김밥을 먹을 수 있다니. 맨밥도 아니었다. 마요네즈를 버무린 참치, 고추장 양념을 한 쇠고기 등 짭조름한 속 재료가 심심함을 달래 줬다. 삼각김밥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0년이다. 그때 가격은 700원, 15년이 지난 지금 가격은 800원, 비싼 건 900원이다. 여전히 1000원도 안 된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0원 미만으로 밖에서 밥과 반찬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건 삼각김밥이 유일하다. 삼각김밥은 주머니가 가벼운 중고교생들의 배를 채워 준다. 가볍게 한 끼를 때우려는 여성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이 혁명적 먹을거리가 뜬 것은 대한민국 축구사(史)에서 혁명과도 같았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다. 길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들은 허기를 달래고자 편의점으로 몰렸다. 편의점마다 삼각김밥이 동이 났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삼각김밥은 국민 간식이 됐다. 삼각김밥의 인기는 편의점을 대중화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삼각김밥 부동의 1위는 ‘전주비빔’

2002년 월드컵 때 삼각김밥이 유명해졌지만 사실 삼각김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89년 한국에 편의점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삼각김밥은 판매대의 한 구석을 지켰다. 눈길을 주는 손님이 거의 없었을 뿐이다. 삼각김밥은 2000년대 이전에는 편의점보다는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식품이었다. 일본에서 ‘오니기리’라고 불리는 삼각김밥이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판매됐다. 지금과는 삼각김밥 내용물이 많이 달랐다. 연어알 명란 등 일본인들이 즐겨 먹던 재료였다. 가격도 900∼1000원으로 2000년대에 편의점에서 판매된 삼각김밥 가격보다 비쌌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삼각김밥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1년 처음으로 방영된 삼각김밥 TV 광고는 삼각김밥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월드컵 때 인기가 급성장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각김밥이 나온 것도 그때다. 2002년 출시된 전주비빔삼각김밥은 이후 지금까지 판매 순위에서 부동의 1위다. 전주비빔삼각김밥은 한국의 전통 음식인 비빔밥을 삼각김밥에 접목시켰다. 달콤한 고추장 소스와 야채를 밥과 비벼 김에 싸먹는 것이 한국인의 입맛에 들어맞았다. 삼각김밥을 살 때면 으레 전주비빔을 고른다는 직장인 허정민 씨(31)는 “전주비빔은 다른 삼각김밥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삼각김밥들은 흰 밥 가운데에 속 재료가 있어서 처음과 마지막에는 흰 밥만 먹어야 한다. 하지만 전주비빔삼각김밥은 처음 베어 물 때부터 마지막 한 입까지 동일하다. 편의점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다.


전주비빔이 나오기 전까지는 참치마요삼각김밥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CU의 2000년 삼각김밥 판매 순위를 보면 참치마요가 1위다. 참치마요는 인기 반찬인 참치에 마요네즈 소스를 버무렸다.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전주비빔삼각김밥을 넘어선 적은 없다. 전주비빔삼각김밥 출시 이후 만년 2위다.

1위와 2위는 변함이 없지만 나머지 재료의 삼각김밥들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소고기고추장 화끈불갈비 등 매운맛의 속 재료가 인기를 끌었다. 유선웅 CU 간편식품팀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까지는 금융위기 등으로 불황이 이어지며 식자재부터 모든 음식에서 매운맛이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2010년 판매 순위를 보면 전주비빔과 참치마요에 이어 소고기고추장이 3위다. 핫불닭 불삼겹볶음 등도 당시에 인기를 누렸다.


삼각김밥 신메뉴?…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시대별로 달라지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삼각김밥도 달라진다. 편의점 상품기획자들은 소비자들의 선호 음식, 일본 편의점 업계의 동향, 경쟁 업체의 움직임 등을 고려해 새로운 메뉴를 제안한다. 20, 30대 여성을 겨냥할지 직장인 남성이 간식으로 즐길 메뉴를 개발할지 등 공략 대상에 따라 결정도 달라진다. 주로 바뀌는 것은 삼각김밥의 속 재료다. 최근에는 밥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흰쌀밥뿐이었다면 요즘에는 흑미나 현미를 쓰기도 한다. 밥의 품질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CU에는 밥 소믈리에 2명이 삼각김밥에 들어가는 쌀을 꼼꼼히 살핀다. 수분 함량 등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갓 도정한 쌀을 써야만 수분 함량이 높아 차지고 향이 깊은 밥맛을 낼 수 있다. 편의점들이 대부분 도정한 지 1, 2일 이내의 쌀을 사용하는 이유다.

상품개발팀에서 시제품을 만들면 우선 내부 평가를 거친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미리 맛보게 함으로써 개선점을 찾기도 한다. 대학생 모니터링단이 대표적이다. 삼각김밥을 즐겨 먹는 이들이 주로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신상품이 출시되지만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CU 간편식품팀에 따르면 1년에 새롭게 나오는 삼각김밥은 20여 종류다. 이 중 살아남는 것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나오자마자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올해 3월 나온 ‘알래스카연어주먹밥’도 그런 경우다. 연어 통조림의 소비가 늘어나며 연어가 참치처럼 대중적인 반찬으로 자리 잡은 것에 근거한 출시였다. 하지만 소비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참치와 맛이 크게 다르지 않은 통조림 연어에 소비자들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참치를 넣은 삼각김밥보다 100원 비쌌던 것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현재 해당 상품의 생산은 중단됐다.

CU에서 2010년 출시한 와사비김 주먹밥도 두 달 만에 자취를 감춘 상품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최초로 김에 고추냉이(와사비) 가루를 뿌린 제품이었다. 중장년층에서는 호응이 좋았다. 문제는 삼각김밥의 주된 고객인 중고교생 및 여성이 외면한 것. 편의점에서 파는 간편 식품은 대부분 남성이 구매하는 비중이 높다. 유일하게 여성의 구매가 많은 것이 삼각김밥이다. 편의점에서 팔리는 대표 제품인 도시락의 경우 남녀 비율이 6 대 4인 데 비해 삼각김밥은 남녀 비율이 4.5 대 5.5 정도로 여성이 더 높다.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삼각김밥을 찾는 여성이 많기 때문. 또한 다른 간편 식품에 비해 옷에 냄새가 밸 염려가 적다. 컵라면처럼 옷에 국물이 튈 걱정도 없다. 이런 여성 고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삼각김밥은 생존하기 쉽지 않다.

예상과는 다른 시장 반응 때문에 사라진 상품도 있다. 2008년 나온 삼각용기형 주먹밥은 비닐을 양쪽에서 벗기는 방식이 아닌, 삼각김밥을 질소충전형 삼각형 용기에 넣어 포장했다. 그 덕분에 유통 기한은 하루 늘어났다. 편의점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거라 기대했지만 정반대였다. 유통기한이 연장되자 고객들은 오히려 신선도에 의구심을 가졌다. 결국 출시 2개월 만에 생산이 끊겼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삼각김밥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일본이다. 일본 음식 연구가들은 794년부터 시작된 헤이안시대부터 밥을 김으로 싸 먹는 식문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김으로 밥을 싸면 밥이 손에 붙지 않아 편하게 집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으로 싼 주먹밥은 에도시대(1603∼1867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일본어로 오니기리인 ‘김으로 싼 주먹밥’ 중 가장 흔한 형태가 삼각형 모양이다. 왜 하필 삼각이었을까. 음식 연구가들은 오니기리란 이름에서 그 이유를 추측한다. 오니기리는 일본어로 ‘쥐다’ 또는 ‘잡다’라는 뜻의 ‘니기루(にぎる)’라는 동사의 명사형인 ‘니기리(にぎり)’에서 왔다. 손에 쥐고 한 입씩 먹으려면 사각형이나 공 모양보다는 삼각형이 편하다. 삼각형이 다른 모양에 비해 먹을 때 밥알이 입에 덜 묻는다. 또 마지막까지 모양을 부서뜨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1970년대 일본에 편의점이 생기면서부터 삼각김밥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비슷한 주먹밥을 즐기던 일본인들은 거부감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일본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포장 방식이 나온 것은 1978년이다. 바삭바삭이란 의미의 ‘바리바리’에서 파생된 ‘바릿코 필름’으로 불리는 포장지가 개발됐다. 6년 뒤인 1984년에는 이 필름의 개봉선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양옆을 당겨서 벗기는 포장 방식이 쓰이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국에 처음 삼각김밥이 들어왔을 때는 이런 식으로 포장을 뜯는 게 생소했다. 무심코 비닐을 뜯으려다 김이 찢어지는 경험을 한두 번씩은 해야 했다. 정우현 씨(33)는 “한때는 삼각김밥을 제대로 뜯을 수 있느냐가 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며 웃었다. 바릿코 필름 방식은 김과 밥이 분리돼 있다. 비닐을 벗겨 내야 김이 밥에 붙는 식이다.

일본에는 김을 밥에 직접 싸는 ‘지카마키’ 방식의 삼각김밥도 있다. 과자 봉지를 뜯듯 포장지를 뜯어서 꺼내 먹으면 된다. 처음부터 김이 밥에 붙어 있기 때문에 김이 눅눅해진다는 게 단점이다.

일본 편의점에서 처음 팔린 삼각김밥의 속 재료는 ‘연어, 매실장아찌, 다시마, 가쓰오(가다랑어)’ 등이었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반찬들이 한 가지씩 재료로 쓰인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참치마요, 참치양파, 연어양파처럼 하나가 아닌 2가지 식자재를 혼합한 삼각김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쇠고기 돼지고기 등 사용되는 재료는 더욱 늘어났다.


삼각김밥에 담긴 한국 일본의 차이

일본에서 삼각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다양해졌지만 인기 있는 재료는 30,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포털 사이트인 ‘익사이트 저팬’이 운영하는 ‘익사이트 뉴스’의 올해 4월 기사를 보면,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삼각김밥의 속 재료 1위는 구운 연어다. 2위는 매실장아찌, 3위는 명란젓이다. 이어 미역 대구알 가쓰오 참치 등이 뒤따른다. 모두 한 종류의 반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이 한국 삼각김밥과 다른 점이다. 유선웅 팀장은 “일본은 양념을 하지 않은 속 재료 자체를 좋아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삼각김밥에 양념이 배어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주비빔이 인기가 많은 이유다. 소고기고추장 참치김치 등에서 보듯 다른 속 재료들도 대부분 양념한 것이다. 현재 CU에서 팔리고 있는 삼각김밥은 13종류. 이 중 일본처럼 연어, 다시마같이 재료 하나를 양념 없이 그대로 넣은 경우는 없다. 일본은 정반대다. 한국의 전주비빔처럼 밥 자체에 강한 양념을 하는 경우는 없다. 매콤한 양념의 재료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일 양국에서 모두 인기 있는 메뉴는 맵지 않은 참치마요삼각김밥 정도다. 일본의 음식 뉴스 사이트인 엔타베의 지난해 12월 발표를 보면 일본의 3대 편의점 업체-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의 삼각김밥 판매 순위에서 참치마요는 모두 1위 또는 2위였다.

이러한 양국 간 차이를 삼각김밥을 즐기는 연령층의 차이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에서 삼각김밥은 2000년대 들어 젊은층이 간식거리로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자극적인 맛이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삼각김밥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팔기 전에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길거리에서 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즉 어린애부터 노년층까지 누구나 먹는 음식이었던 것. 한국도 일본처럼 오래전부터 삼각김밥을 먹었다면 멸치볶음 우엉 명란젓이 들어간 삼각김밥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삼각김밥이 진화하고 있는 것은 공통적이다. 한국 편의점에서는 밥을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 그 위에 스팸햄이나 너비아니구이 같은 재료를 밥 크기만큼 얹은 ‘밥 바’란 상품이 나왔다. 밥 이외의 반찬 재료도 배불리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소 갈비살과 돼지 항정살 등 구운 고기를 넣은 삼각김밥이 나왔다. 최근에는 삼각김밥 이름에 쌀의 산지를 넣어 고급 쌀을 썼음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식문화를 모방하며 발달해 온 한국과 일본의 공통 국민 간식 삼각김밥이 앞으로는 어떻게 변해 갈지 지켜볼 일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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