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제3세계 국가들의 ‘식민지 청산의 머나먼 길’… 진정한 화해, 대부분이 아직도 ‘미완’

ㆍ‘역사비평’서 한·일협정 50주년 맞아 특집으로 다뤄

▲ 독일 - 폴란드

독일 브란트 ‘크니팔’로 모범적 사과


▲ 프랑스 - 알제리
프랑스 올랑드 “고통 인정”에 “미흡”


▲ 이탈리아 - 에티오피아·리비아
피식민지 자국 내 혼란으로 어영부영


35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해방 70년이 된 지금도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과 일본처럼 식민·피식민 관계에서 벗어난 유럽과 제3세계 국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도모했을까.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비평’(111호)은 한일협정 50주년을 맞아 식민지배국과 피지배국의 다양한 과거사 청산 노력을 특집으로 다뤘다. 종합하면, 관계 정상화는 그 어떤 곳에서도 쉽지 않았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폴란드는 포츠담 회담에서 폴란드 서부의 오더강-나이세강에 이르는 땅을 영토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수백년간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오더-나이세 국경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은 1970년 빌리 브란트 정부가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고 나서야 오더-나이세 국경을 인정했다.

결정적 장면은 브란트가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른바 ‘크니팔’이었다. 오늘날까지 화해와 참회의 상징이 된 크니팔은 사실 브란트의 측근들조차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브란트는 훗날 “나는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숙소였던 빌라프 궁전을 떠날 때 이미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추모해야만 한다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고 회고했다. 크니팔은 독일 내에선 “과장됐다”는 등 ‘배신행위’라는 반응을, 폴란드에선 아예 무반응을 얻었지만 세계적으론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독일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용일 대구교대 교수는 크니팔을 브란트식의 ‘감정의 정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평가했다.

130여년에 걸친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배는 1954년부터 8년간 이어진 알제리 독립전쟁의 직접적 결과인 에비앙 협정(1962년)으로 끝났다. 그러나 양국 모두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쿠데타가 이어진 알제리에선 독립투쟁사를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하기 바빴고, 유례없는 경제발전기에 들어선 프랑스에서 알제리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됐다. 10여년의 내란을 거친 뒤인 1999년 치러진 민주선거에서 알제리 대통령에 당선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는 민족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선 “알제리인이 자신의 역사와 화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2000년 프랑스를 방문해 “어제의 피지배자들에 대해 옛 종주국이 짊어지는 도덕적 부채는 지워질 수 없고, 굳이 말하자면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고 연설했다. 정부 사이의 줄다리기와 양국 여론의 공방이 이어졌다. 2012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식민통치가 알제리인들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제리인들이 요구한 ‘사과’에는 못 미치는 표현이었다. 이용재 전북대 교수는 “두 나라의 진정한 화해는 아직 미완”이라고 봤다.

자국 내 혼란으로 식민종주국에 강력한 사과 요구를 하지 못한 건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에티오피아, 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가 집권 중이던 에티오피아와 리비아는 국제무대에서 강한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장문석 영남대 교수는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정권과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이라는 ‘더 큰 악’에 비하면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는 ‘문명적인’ 것이었다는 자기합리화도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병욱 편집주간은 “식민지배·피지배의 역사는 해방 이후 당연히 탈식민의 길로 이어질 것 같지만 각각의 필요와 관계에 따라 무시되거나 좁혀지거나 비틀어졌다”며 “제국주의적 관계의 과거사는 당장은 성가신 짐 같지만 그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린다면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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