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희망캠프기구(ACOPIA) 대표소개

亚洲希望交流活动机构代表介绍

アジア希望キャンプ機構代表紹介

Representative of ACOPIA

조규철 

한국외국어대학교졸업(서울), 일본국립쓰쿠바대학교 사회과학연구과정치학석사정치학박사, 일본케이오대학교법학부방문교수, 고려대학교국제대학원강사, 한국정보화진흥원(NIA)정보화연구실선임연구원, 국가정보원(NIS)사무관최종합격, 대전대학교전임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조교수-부교수, 외교통상부자문위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자문, 국가청소년위원회부위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일본어과학과장, 행정고시출제위원, 한국관광가이드면접선발위원, 일본정부국비유학생면접선발위원, 한국일본학회학술이사, 한국행정학회섭외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국제대학원일본학과주임교수, 교육부검정고등학교일본어교과서공동저자, 일본쓰쿠바대학교 연구원, 한일사회문화포럼설립(1999년), 한일사회문화포럼대표, 한일사회문화포럼사무국장, 한일국회의원포럼 주최, 한일언론인워크숍 주최, 한일미래포럼 주최, 한일지자체포럼 주최, 일본국제교류기금펠로십(1년간), 한일관계의미래를여는모임설립(도쿄), 주식회사코리아플라자히로바설립대표(2012~), 아시아희망캠프기구설립대표(2014~), 아코피아 평생교육원(서울시교육청등록) 원장, 쿠마모토현립대학교 연구원(일본의 외국인정책과 다문화공생, 2017년10월~), 사단법인 아코피아프랜드십 대표(2018.5~), 아코피아댄스아카데미 원장(2019.1~), 국외여행업등록, 대중문화예술기획업등록(2019.10~), 법무부 이민자사회통합프로그램운영기관(KIIP) 지정(2020.01~), 아코피아갤러리대표, 바비디팩토리연예기획사, 취업무료소개소(2022.04~), 성남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선발위원(2023).

Hochiminh 20 July 2019


曺圭哲(チョキュウチョル) 

韓国外国語大学(ソウル)卒業、筑波大学大学院社会科学研究科卒業(法学修士・法学博士)、高麗大学国際大学院日本学科講師、韓国情報化振興院(NIA)情報化研究室先任研究員、国家情報院(NIS)事務官最終合格(本部)、大田大学専任講師、韓国外国語大学助教授・副教授、外交通商部諮問委員、国家安全保障会議(NSC)諮問、国家青少年委員会副委員長、韓国外国語大学日本語学科学科長、韓国外国語大学国際大学院日本学科主任教授、行政高試出題委員、韓国観光ガイド面接試験委員、日本政府国費留学生面接選抜委員、韓国日本学会学術理事、韓国行政学会渉外委員、教育部検定高等学校日本語教科書共著、筑波大学社会科学研究科研究員、慶応義塾大学法学部訪問教授、韓日社会文化フォーラム設立(1999年), 韓日社会文化フォーラム代表(1999~2009)、韓日社会文化フォーラム事務局長(2010年~)、韓日国会議員フォーラム主催、韓日自治体フォーラム主催、韓日言論人ワークショップ主催、韓日未来フォーラム主催、日本国際交流基金フェローシップ(1年間)、日韓関係の未来を拓く会(東京)設立、株式会社コリアプラザひろば設立代表(2012~)、アジア希望キャンプ機構設立代表(2014~)、アコピア生涯教育院(ソウル市教育庁登録)院長、熊本県立大学研究員、一般社団法人アコピアフレンドシップ代表、アコピアダンススタジオ院長、大衆文化芸術企画業登録、韓国法務省の移民者社会統合プログラムセンター(KIIP)指定(2020.01~)、Bobbidi Factory Entertainment、Acopia Gallery、日本人の韓国就職紹介所


Kyucheol Cho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Seoul). Master's degree and doctorate in law at the University of Tsukuba, Japan. Postgraduate university lecturer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at Korea University. Research Officer at the 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 (NIA) Informatics Laboratory, Successful Candidate for the South Korean Intelligence Service (NIS). Full-time lecturer at Daejon University, private lecturer at th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dvisory Commissioner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dvisory Committee Member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Vice-Chairman of the Government Youth Commission, Dean of the Department of Japanese Language at th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Examiner in Public Administration, selection of interviews in Korean travel guides and advisers for exchange students, who are financially suppor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Scientific Member of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Korean Society of Japanese Studies, Chairperson of the South Korean Association of Public Administration, Head of the Department of Japanese Language at Hankuk University for Foreign Studies. Co-author of a Japanese textbook, authoriz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guest professor in the field of law at Keio University in Japan, founding the Korea Japan Forum (1999), Korea Japan Forum Secretary, Secretary General of the Korea Japan Forum Future Forum in Tokyo, founding Korea Plaza Horiba (2012), Representative of Korea Plaza Horiba, founded Asia Hope Camp Organization (2014), Representative of the Asia Hope Camp Organization, Representative of Acopia Lifelong Education Center(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Kumamoto Prefectural University Reseacher(2017.10~), Representative of General intercoporated Association Acopia Friendship(2018.5~) , Acopia Dance Academy(2019.1~), Registered as a Pop Culture art Planning business(2019.10~), Korean Immigration and Integration Program Center registered with Ministry of Justice (2020.01~), Bobbidi Factory Entertainment, Acopia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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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治体国際化フォーラム』293号 会議体から現場へ、日韓からアジア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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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이 집필한 2006년 후소샤(扶桑社)판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4% 정도일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4년 전의 채택률 0.039% 비해선 10배가량 늘어났지만 출판수익이 발생하는 10%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아사히 신문은 채택률이 1%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는데, 실제론 그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 미래를 위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채택률 0.4%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한.일 양국 시민운동과 양심 세력의 승리'이고 '일본 우익의 패배'라고 자축할 것인가, 아니면 4년 전에 비해 채택률이 10배가량 늘어난 만큼 일본이 10배 정도 우경화되었다고 판단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일본의 대다수 시민은 역사인식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일본 각지의 교육위원회는 각각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번에도 위원들은 "외교 문제 등의 소동에 휘말리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1997년에 설립된 '새역모'가 주도한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역사인식 문제가 일본의 일반 시민들에게도 관심 대상이 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새역모'의 역사교과서는 이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교육 현장에서 대다수의 교과서로 채택되기엔 역부족이다. 일본의 교육자 단체의 양심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단단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역모'는 분명 극우세력이다. 하지만 교과서로서 채택할지 말지는 누가 집필했느냐가 아니라 그 교과서의 내용을 통해 판단된다. 극우세력은 변하지 않더라도 그 교과서의 내용과 형식이 수정되고 변하면 채택률도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가 다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인식을 좁힐 수도 없다. 한.중.일 3국의 진보적인 역사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올 여름부터 시판 중인 역사학습용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본어판에서는 한국전쟁을 "북조선 인민군이 반도 남부의 해방을 목표로 남하를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동일한 부교재의 한국어판에는 다르게 기술돼 있다. 
필자는 현재 일본의 쓰쿠바대학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데 10년 만에 다시 일본에 장기 거주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점은 10년 전과 비교해도 답답할 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매일같이 변하는 역동적인 사회가 아니다. 일본에는 많은 주민단체가 존재하지만 범국가적인 쟁점을 다룰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시민단체는 없다. 
촛불시위와 같은 뜨거운 운동으로 일본 사회를 바꾸어 놓으려는 자세로는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보통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십중팔구 입을 다물고 그 소동이 지나기만을 잠자코 기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와 인내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한.일 시민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고, 전문가들에 의한 착실한 연구다. 이제 한국과 일본 어느 쪽도 중앙정부가 한.일 관계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번 9월 11일 중의원선거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가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언론은 다시 한 번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 양심세력의 연대를 강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민당을 선택한 일본의 소박한 보통 시민들은 여전히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있고, 단지 일본의 우정 민영화를 원했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조규철 한국외대 교수.일본정치)


[포럼]독도문제 민간교류로 해법찾자

입력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가 21일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있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의 해법도 찾을 겸, 지난해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 2월 22일을 하루 앞두고 시마네현을 포함한 일본의 주고쿠 지방 5개 현에서 활동하는 한일 교류단체를 차례로 방문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사연을 접하면서 한일 간에 성숙한 민간교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시마네현 한국민단의 박희택 고문은 애초에 물개잡이 때문에 시작된 한일간의 분쟁에 정작 물개들은 소중한 번식지를 잃어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박 고문은 1989년에 경상북도와 시마네현의 자매결연을 중개했던 주인공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경상북도와 마주보고 있는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은 일본에서도 가장 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으로,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다. 관광산업과 수산업이 주력 산업이고, 지자체로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인 개호(介護)를 위한 재정 마련이다. 한일교류는 친선과 우정을 위한 것만이 아니고 이들 지자체의 마을 살리기를 위한 전략이다. 한국인 관광객 유치와 독도 주변의 어업협조가 절박한 실정이다. 경상북도 지역의 영덕대게는 일본에서 즈와이가니, 마쓰바가니 등으로 불리는데, 독도 주변에 형성된 즈와이가니 어장은 시마네 어민들의 중요한 생업 공간이다.

지난해 3월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논설주간은 신문 사설을 통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대신 일본인들이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을 한 일이 있다. 이번 달에 특집호로 제작된 시마네현청 공보지 ‘포토 시마네’의 절반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소개하고 있고, 절반은 시마네 어민들의 불만을 담고 있다. 지금 시마네현 사람들에게 독도가 절실한 이유는 다름 아닌 영덕대게(즈와이가니)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독도를 지키려는 이유는 영덕대게 때문이 아니다. 독도는 한반도 전체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빼앗겼던 영토이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하다. 조선과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차례로 일으킨 일본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1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같은 사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시마네 어민들의 요구대로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 무신경한 일본의 정치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독도와 영덕대게만이 한일관계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독도를 위해서라도 일본을 상대로 설득과 협상을 해야 하고 정치적인 대립 속에서도 한일 민간교류는 계속해야 한다.

무릇, 협상의 기본은 적게 주고 많이 얻는 것이다. 일본과의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닌 어업 문제로 풀어야 한다. 시마네의 어민들이 원하는 것은 독도가 아니고 독도 주변 수역에서의 어업활동이다. 독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독도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우익세력이 바라는 바이고 그것은 자꾸만 사태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갈 뿐이다. 일본의 일반 시민과 우익세력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시마네현의 초·중학생 130여명이 참가하는 한국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18년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한국측 단체들이 받기를 거절하자 시마네의 국제교류단체는 울상이다. 그동안 양국의 지자체와 대학, 민간단체와 민간단체 간의 자매결연을 통해 숙성된 네트워크를 서로 개방해서 모두가 모두와 교류하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한일 민간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절실하다.

[조규철 / 한국외대 교수·일본정치학] 


한국일보 [기고] 한일관계 굳은살 벗겨 내자   2007.7.28

최근 일본 언론의 한국에 대한 시각을 확인해 보기 위해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1965년부터 올 6월까지 43년 동안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사설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사설은 약 5,000건으로, 사흘에 한 번은 한국을 등장시킨 셈이다. 한국을 정식 주제로 한 사설만도 466건이나 됐다. 정치상황 및 북한 문제(23%), 일반외교(22.7%), 한일관계 쟁점(19.5%), 사회문제(14.8%), 식민지배(10.7%), 경제문제(6.9%), 문화ㆍ스포츠(2.4%) 순이었다. 

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와 2003년 한류 붐을 거치며 문화교류를 주제로 한 사설이 크게 늘어난 점이 우선 눈에 띄었다. 1990년대 말부터 부쩍 활발해진 인적ㆍ문화적 교류를 반영한 것이다. 역사교과서 독도 야스쿠니 문제 등 껄끄러운 쟁점에 대한 사설이 쏟아져 나온 것도 같은 시기였다. 독도 문제는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앞둔 시기를 제외하고는 2005ㆍ2006년에야 사설에 등장했다. 

야스쿠니 문제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공식 참배 이듬해인 86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집중 거론된 것은 2005ㆍ2006년이었다. 

교과서 문제도 82년 1차 역사교과서 파동 때 처음 등장했지만, 2001년 '새역모' 사태 이후 단골메뉴가 됐다.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와 달리 광의의'역사 문제'에서는 오히려 양국 관계가 후퇴한 듯한 인상을 준다. 

양립하기 어려울 듯한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양국 관계의 특징이다. 두 갈래 흐름을 하나로 모아 진정한 교류ㆍ협력의 길을 열 수는 없을까. 

지난 8년 동안 한일 언론인워크숍, 한일 국회의원포럼, 한일 지자체포럼 등의 대화채널을 정례화해 온 경험으로 보아 우리가 일본에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이해시키고 양국이 크게 상충하지 않는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상호 이해가 겉도는 것은 가치관이 달라서가 아니라, 대화방식이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금세 속을 터놓고 말하고 뒤끝 없이 넘어가지만, 일본은 꼬치꼬치 따지며 차곡차곡 기록으로 쌓아둔다. 주요 쟁점을 두고 한국은 언제나 도덕적 우위에서 일본을 공격하지만, 일본은 사실 확인부터 하자고 따진다. 

이런 차이를 서로 이해한다면 훨씬 원만한 관계가 가능하다.'역사'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중요한 문제지만, 상투적 방법론으로는 해결이 요원하다. 목욕탕에서 굳은 살을 밀어내고 새로 돋은 살과 만나듯, 두 국민이 서로 인식의 굳은 살을 제거할 때 비로소 한일관계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이 열린다. 

고정관념을 깨는 현실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2005년 이후 일본에서 한국을 싫어하는 20대가 크게 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을 좋아하는 20대가 크게 늘었다. 한국 청소년들이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실용적 필요성이 주된 이유지만, 일본어는 좋아서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는 단순히 문화수출이나 관광객 유치 수단이 아니라 한국의 매력을 알리는 소프트 파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적 교류의 비약적 증대가 변화의 기초임은 물론이다. 65년 1만 명이던 상호 방문자가 지난해 500만 명에 이르렀다.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양국 관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려면 인적 교류의 확대에 걸맞은 인식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런 우리의 노력에 일본도 화답, 양국이 속살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규철 (한국외대교수, 일본정치)  


한국일보 [시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하나의 제언 2008.3.22

흔히 쓰는 '미래지향'이라는 말에서 실질적 내용이나 구체적 방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대일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조정하겠다면 눈앞에 닥친 현안의 해결을 미루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지향'은 자주 '실용성'과 충돌한다.

'실용외교'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한일관계에서 '미래지향'을 강조하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어느 정부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 더욱이 미래는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오랫동안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두고 고민해 온 것도 최대한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일관계에는 고정 레퍼토리가 있다. 일제 35년 강점기에 대한 평가,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유골 송환, 자유무역협정(FTA)과 무역 불균형 등 경제문제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된 게 없고 모두 미래에 그 해결이 맡겨진 현안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애매모호할 정도인 '미래지향'이라는 말을 들고 나오면 구체적 목표가 흐려지거나 엉뚱한 오해만 빚을 수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박정희 시대에 시작된 경제협력을 다지고,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된 왕복외교를 재개하는 데 그친다면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한일 양국관계를 정부 간 관계 중심으로 풀어가려는 시도 자체가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데, 경제적 득실을 중심으로 한 실용외교로 풀어가겠다고 시도한다면 오히려 과거 회귀적 색채를 띤다. 따라서 앞으로 한일관계는 거대담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정부 간의 관계보다 민간교류 확대에 치중하는 게 맞다. 특히 민간교류의 장기적 확대재생산 기반을 굳혀나가는 것은 미래지향이라는 목표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이다.

외교통상부는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참가 규모를 현재의 연 3,600명에서 1만 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지방 전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서 매년 1만 명 이상의 재학생이 인턴(연수사원)으로 일본에 가고 있다. 합치면 단순 유학생보다 많은 숫자다. 주요 도시의 일본유학 상담 시장은 워킹홀리데이와 인턴의 중개시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한일 간의 워킹홀리데이와 인턴제도도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지방 전문대의 '3+1' 특성화 사업에 따라 한 학기를 인턴으로 보내는 학생들은 주로 온천여관에서 틀에 박힌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한 학기를 해외에서 지내는 데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초 각 대학에 보낸 공문에서 해외 호텔업계에서 청소나 하는 인턴 파견을 자제하도록 당부했지만 대안은 막막하다. 각 지방 전문대가 해외기업과 단체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파견할 만한 교섭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문화관광부의 '워킹 홀리데이 지원센터'도 새 정부가 들어서며 폐지됐고, 홈페이지만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워킹홀리데이나 인턴 프로그램의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민단과 각종 한일 교류단체, 일본 각 현의 국제교류협회 등이 손을 잡고 나서야 하고, 정부가 현실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체제를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 이런 구체적 대안이 있어야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성과 실용성을 획득한다. 워킹 홀리데이와 인턴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일본 현지의 안전망이 조속히 안정된 체제를 갖추길 기대한다.

(조규철 / 한국외대교수 일본정치) 



(朝鮮日報日本語版2015年12月23日)

韓日大学生40人、通訳を介して激しい論争 

「日本は首相が交代するたびに歴史について違う話をします」

今月20日午前、ソウル国際青少年センター。韓国のある大学生がこのように語ると、日本の大学生が「日本人がみんな政府と同じように考えているわけではない」と反論した。民間団体「韓日社会文化フォーラム」が主催した「韓日未来フォーラム」には、韓国と日本からそれぞれ20人の大学生が参加し、通訳を介して激しい論争を交わした。大学生たちは2日間にわたり慰安婦問題、独島(日本名、竹島)問題など、韓日間に横たわる懸案について討論を行い、その結果を発表した。

韓国側からは「日本の学生たちは歴史問題に無関心のようだ」、日本側からは「韓国の学生たちは模範解答のように同じことしか言わない」といった不満の声も聞こえた。どのテーマでも何か明確な結論を出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韓国から参加したチェ・ホンチョルさん(21)は「日本人の友人はいるが、感情を害すると思うのでデリケートなテーマについてはこれまで話題にすることを避けてきた」と語る。準備段階から参加した春日井さん(25)が「それでも考え方が違うことを認め合い、対話を始めたこと自体が成果だと思う」と話すと、周囲の学生たちもうなずいた。あるいは「複雑なテーマはすぐ解決できるわけでもないので、まずはそれに伴う感情の問題から解決すべきだ」といった折衷型の意見もあった。「異なった見方があることは最初から分かっていた」「今回は相手の主張について、その論理的な根拠を聞き、そのような見方もあるということを理解した」という声が大勢を占めていたようだ。

 

「今回参加した学生たちこそ、韓日関係発展に最も希望を持てる世代」という見方もあった。日本から参加した小林さん(22)は「私たちは過去のことを直接体験したわけではないため、じっくりと落ち着いて話ができるという側面がある一方で、元慰安婦女性など当事者たちの声を聞ける最後の世代でもある」と述べた。来年は「竹島の日」を制定した島根県で開催される予定だ。主催者側は「非常にデリケートな場所でより深い話ができるようにしたい」と抱負を述べた。


Despite diplomatic rows, Japan and South Korea are growing closer

The young do not care as much about colonialism

 

The cultural affinity of young South Koreans and Japanese stands in stark contrast to the animosity between the two countries’ politicians. The neighbours have much in common culturally, and share strategic interests in Asia. But since establishing formal diplomatic ties in 1965, two decades after the end of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relations have oscillated between bad and worse.

Ties deteriorated again this month when South Korea undermined an agreement of 2015 that was supposed “finally and irreversibly” to have settled the thorniest dispute of all, over the “comfort women”—South Koreans forced during the war to work in Japanese military brothels. The government of Moon Jae-in, South Korea’s president, asked Japan for an apology (already given) and implied that Japan had not paid enough compensation by saying it would match the ¥1bn ($8m) Japan is providing to support the last surviving victims. In response, Shinzo Abe, Japan’s prime minister, suggested that he would skip the opening of the Winter Olympics in South Korea next month.

Colonial history is the main cause of the bad blood between the governments. The Japanese grumble that the South Koreans are emotional, renege on agreements and have made hostility to Japan part of their national identity. South Koreans retort that the Japanese are reluctant to face their wartime past, especially under Mr Abe, who is seen as a revisionist. There is some truth to both narratives, but the diplomatic back and forth has become petty. “I feel sold out by both,” says Lee Ok-seon, a 91-year-old former comfort woman.

America, the closest foreign ally of both countries, is frustrated too. Closer co-operation is needed to counter China, whose regional hegemony is feared by both countries, and to rein in North Korea, whose missiles threaten them both (and the American bases they host). In 2016 Japan and Korea agreed to share intelligence on North Korea. Ties are deepening between their armed forces, too. But much more could be done, says an adviser to the American armed forces in Seoul.

History matters to the young, too, but not as much as to the old. Youth in both countries have more favourable views of the other than older generations, polls say. Japanese of all ages feel more affinity with South Koreans than with Chinese; South Koreans in their 20s have warmer feelings towards the Japanese than the Chinese, unlike older people. Some are even trying to repair relations. In December young South Korean and Japanese students met in Seoul to discuss “the difference in ways of thinking” about comfort women, says Kaho Okada, a Japanese participant.



K-POPアイドルになりたい!オーディションツアーに参加する日本の女子高生

K-POPアイドルになりたい!オーディションツアーに参加する日本の女子高生に密着

昨年末の紅白に出場したTWICEも、9人のメンバーのうち、3人が日本人だ。

2018年01月27日 15時40分

世界で増え続ける韓流ファン。韓国の聯合ニュースによると、その数は前年比23%増、7千万人を突破したという。そんな中、K-POPの世界でアイドルを目指す日本人の若者も増えているという。

AbemaTV『AbemaPrime』取材班が訪れたのは、韓国・ソウルにある仁川国際空港。到着ロビーに、アイドルを目指して、はるばるこのソウルまでやってきた若い女の子の集団がいた。「いっぱい学べて、自分のためになるなと思ったので」

「韓国のアーティストが好きで、自分もそういう人たちみたいになりたいなと思って」

彼女たちが参加したのは、K-POPアイドルを目指す日本人のために企画された3泊4日のオーディションツアー。値段は航空券代別で9万円だが、本場のダンスレッスンを受けることができ、韓国の芸能事務所のオーディションを受ける権利まで用意されている。

若者が集う街「ホンデ」に到着してすぐに始まったのは、練習スタジオでのダンスレッスン。本気でプロを目指しているということもあり、ほとんどの参加者がダンス経験者だが、ひときわキレのあるダンスを披露していたのが、高校3年生の石井萌絵さん(18歳)。「何よりダンスがかっこいい。日本のよりも韓国のアイドルのダンスの方がやっぱり難しい」。小学生の頃に見た少女時代やKARAに影響を受け、現在は千葉県の高校に通いながら、週2回、都内のスタジオでダンスレッスンを受けている。

K-POPファンの石井てる美は「日本のアイドルは"育てる"みたいな感覚があって、未完成な存在を身近に感じながら応援する感じだと思う。K-POPの場合、作曲者も世界中から集め、5、6年間トレーニングして、完成させてからデビューさせる。ダンサー・アーティストに近いと思う」と説明する。

ツアー2日目となる翌日に訪れたのは、韓国ナンバーワンとの呼び声も高い「1ミリオンダンススタジオ」。レッスンの最後には優秀者の映像をYouTubeにアップする。韓国の芸能界にデビューするにはオーディションに合格し「練習生」として事務所に所属、歌やダンスなどの技術を磨いていくことになる。しかし、その中からデビューできるのはほんの一握りの人たち。だからこそ、登録者数が790万人を超えるこのスタジオのYouTubeチャンネルに登場することが、世界から注目されるチャンスにつながる、とても意味のあることなのだ。

憧れのスタジオに緊張気味の石井さん。「もうやばいです。日本でやってるレッスンとは全然レベルが違います」。周りの韓国人受講者のレベルの高さに少し圧倒されてしまったようだ。今回も、日本人のツアー参加者は選ばれることはなかった。「もう凄すぎて、自分がどんだけできないかみたいなのがわかって、途中で心が折れて"あ、踊れない"って」。

K-POP界が日本人のチャレンジを必要としているのには理由がある。

「K-POP自体もグローバル化の流れの中、日本市場でのステップアップの必要性を感じているので、日本人のメンバーは需要があると思います」。あのTWICEの振付師として"TTポーズ"も生み出した、ダンサーのリア・キムさんはそう語る。日本をターゲットに考え日本人を入れ、中国をターゲットにするならば中国人を入れる。世界での市場拡大を目指す韓国芸能界にとって、それは一つの戦略だと話す。実際、昨年末の紅白に出場したTWICEも、9人のメンバーのうち、3人が日本人だ。

さらにキムさんは、他の国の女性にはない日本人の魅力もあると話す。「韓国人女性は堂々としていて"強さの中の可愛さ"があるとしたら、日本の女の子たちは、何をしなくても可愛いものを持っているんです。"種類の違う可愛さ"なんです」。

 

そして3日目のオーディション本番。審査項目は「歌」「ダンス」そして「フリーパフォーマンス」の3つ。事務所関係者たちは撮影もしながら、厳しく審査していく。これまで500人もの日本人が挑戦してきたが、通過したのはわずか5人という狭き門だ。韓国語による自己紹介も練習して臨んだ石井さんだったが、2次審査に進むことは叶わなかった。「でもあきらめません」。K-POPアイドルになるという「夢」をあきらめることはなく、高校卒業後、韓国に渡ることを決めた。(AbemaTV/『AbemaPrime』より)


[한계례21] 하루노의 꿈
‘아코피아’는 하루노와 같은 꿈을 지닌 일본 청소년들이 찾는 곳이다.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 사업을 하던 조규철 아코피아 대표는 “한국 연예계에 관심 있는 일본 청소년들의 문의가 늘어나며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매달 일본 청소년 20명 정도가 이곳을 통해 한국 기획사의 문을 두드린다. 지금까지 약 500명이 거쳐갔다”고 말했다.

SBS TV Nestory  2019. 04. 13 (토)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일본은 우리에게?" 

"뉴스나 인터넷만으로 듣거나 본 것만을 믿지않고,  한번 직접 한국에 와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여러가지를 보거나 느낀 것을 그대로 하면 되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Yuuka Hasumi put high school in Japan on hold and flew to South Korea in February to try her chances at becoming a K-pop star, even if that means long hours of vocal and dance training, no privacy, no boyfriend, and even no phone.

Hasumi, 17, joined Acopia School in Seoul, a prep school offering young Japanese a shot at K-pop stardom, teaching them the dance moves, the songs and also the language.

She is one of an estimated one million other K-pop star wannabes, from South Korea and abroad, hoping to get a shot at super competitive auditions by major talent agencies that will take on just a select few as "trainees".

"It is tough," Hasumi said in Japanese, drenched in sweat from a dance lesson she attended with 15-year-old friend Yuho Wakamatsu, also from Japan.

“Going through a strict training and taking my skill to a higher level to a perfect stage, I think that's when it is good to make a debut," she said.

Hasumi is one of 500 or so young Japanese who join Acopia each year, paying up to $3,000 a month for training and board.

The school also fixes auditions for its candidates with talent management companies that have been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Korean-wave" pop culture that exploded onto the world stage in the past decade with acts such as global chart topping boy band BTS.

The influx of Japanese talent that is reshaping the K-pop industry comes at a time of increasingly bitter political acrimony between the two countries that has damaged diplomatic ties.



외국인들이 일자리와 배우자를 찾아 한국으로 오는 ‘경제적 이주’를 넘어, 한류와 케이팝(K-Pop)을 익히러 이 땅을 찾는 ‘문화적 이주’가 늘고 있다. 대학 캠퍼스와 강의실은 유학생들로 넘쳐난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은 ‘글로벌 타운’이 된 지 오래다. 5월24일 저녁 홍대 앞 ‘아코피아 다문화 카페’에 걸그룹 트와이스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연스레 일어나 춤을 춘다. 왼쪽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생 소피, 미국 대학생 사이언, 일본 여고생 가쓰키와 유카, 프랑스 대학원생 밀리엄. 케이팝이 좋아서 또는 케이팝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rshoot@hani.co.kr

Cultural migration beyond economic migration ...

'Cultural migration' is on the rise, as foreigners go beyond 'economic migration' to come to Korea to find jobs and spouses, to learn Korean culture and K-Pop. College campuses and classrooms are full of foreign students. The area around Hongik University in Mapo-gu, Seoul, which attracts many young people, has long been a 'global town'. On the evening of May 24, a song from the girl group Twice was echoed in the 'Apopia Multicultural Cafe' in front of Hongik University. Young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wake up and dance. From the left are Australian university student Sophie, American college student Cyane, Japanese high school girls Katsuki and Yuuka and French graduate student Myriam. They are young people who love K-pop or dream of K-pop stars.


第10回きれいな海を守るための日韓青少年のボランティア活動 


日本と韓国の学生が一堂に会して日韓関係の課題とこれからについて話し合う「韓日未来フォーラム」が16日まで、島根県立青少年の家(出雲市小境町)で開かれた。参加した30人の学生は日韓関係がこじれる背景となった徴用工問題などについて議論し、若い世代が交流を続けることの意義を互いに確かめた。

 フォーラムは13日から3泊4日で実施され、「強制徴用労働者」(徴用工)「在日朝鮮・韓国人」「ジェンダー、フェミニズム」「日韓の観光産業」の4班に分かれ、両国語を交えて計10時間以上議論。各班がまとめた課題と改善策を発表した。

 徴用工問題を議論した班は「韓国では高校までの歴史科目で日本の植民地時代を詳しく学ぶが、日本の学校教育ではほとんど教わらない」「日韓ともメディアが政治家らの一方的な意見ばかりを伝え、幅広い市民の声があまり報じられない」と課題を指摘。若い世代がSNSなどを駆使してそれぞれが学び、感じたことを同世代へ発信していくことが大事だと提案した。

 ソウルから参加した東国大3年のチャン・ユジンさん(21)は韓国での日本製品の「不買運動」もあり、参加するかどうか直前まで迷ったという。「こういう時こそ対話が必要だし、民間交流を活発にしなければと感じました」と話した。

 大阪大4年の溝口遼馬さん(22)は「日本も韓国も互いに誤解があることを知りました。誤解を解いていくには、僕たちのように政治の場にいない者が対話を続けていくことが必要です」と感想を語った。

 韓国のNPOの呼びかけで5年前に始まった同フォーラムは年2回実施され、11回目。今回は、日韓関係の悪化の影響で参加を見合わせる学生もいた。

 

 議論するテーマは、運営にあたる学生らで決めた。実行委員長を務めた東京外国語大大学院の村田佐希子さん(24)は「単に集まって仲良くしましょうだけでは意味がないと考えました。敏感な問題をじっくり話しあいたいと思い、議題を選びました」と述べた。(中野晃)